식품 대기업들이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 휴머니제이션(Pet Humanization)' 트렌드를 정조준하며 펫푸드를 미래 핵심 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단순 사료를 넘어 노령견용 회복식, 기능성 처방식, 유전체 기반 맞춤형 영양제 등 이른바 '푸드테크'를 접목한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모습이다. 내수 식품 시장의 성장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동안 축적해온 식품 제조 노하우를 펫푸드 영역의 경쟁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풀무원은 올해부터 펫푸드 사업 관련 조직을 전면 개편했다. 기존 조직을 재편해 '신성장사업부'를 신설하고, 펫푸드 관련 부서를 이 사업부 산하로 이관했다. 반려동물사업부를 비롯해 푸드테크사업부, 리빙케어사업부 등을 함께 묶어 미래 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풀무원(017810)은 지난 2013년 펫푸드 브랜드 '아미오'를 론칭한 이후 반려동물용 두부과자, 두부 너겟 등 식물성·친환경 콘셉트 제품을 선보이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최근에는 다이소에 입점하며 대중 유통 채널까지 소비자 접점을 확대했다. 풀무원 관계자는 "작년 반려동물사업부 매출은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라며 "매출 규모가 현재는 크지 않지만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보고 펫푸드 사업 조직을 개편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원F&B는 지난해 펫푸드 조직을 사업부로 승격하며 사업 비중을 키웠다. 최근에는 창원공장에 사료 생산 설비를 증설하며 생산 역량 강화에도 나섰다. 참치 가공 기술을 앞세운 습식 캔 제품은 일본, 홍콩 등 1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에는 작년 상반기부터 수출하기 시작했다. 미국 전역 7만여 개 유통망과 온라인몰에 입점했다.
하림펫푸드는 닭고기 원물 경쟁력을 기반으로 '100% 휴먼그레이드'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휴먼그레이드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사료의 최상위 등급이다. 하림은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며 최근에는 생식을 선호하는 소비 트렌드에 맞춰 '더리얼 로우 패티' 등 신제품을 출시했다. 하림 관계자는 "더리얼 로우는 뼈를 바른 생고기만 사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85% 이상의 뼈 없는 생고기는 하림그룹에서 공급받는 신선한 닭과 오리, 엄선한 돼지고기와 연어다"라며 "반려동물에게 고품질, 고육류 함유량의 사료를 급여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라고 밝혔다.
대한제분(001130)은 2018년 펫푸드 전담 조직을 분리해 '우리와 주식회사'를 설립하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지난 13일에는 '우리와 펫푸드 연구소'를 설립했다. 160억원을 투자해 석·박사급 반려동물 영양학 전문 연구진 13명으로 연구소를 구성했으며, 중장기적으로 차별화된 기능성 제품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시장 성장세도 식품 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싣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펫푸드 시장 규모는 2018년 884억달러(130조원)에서 2024년 1343억달러(198조원)로 확대됐다. 연평균 성장률은 7.2%에 달한다. 2032년에는 2246억달러(33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펫푸드 시장 역시 같은 기간 연평균 10.3% 성장해 2024년 기준 16억달러(2조3500억원) 규모로 커졌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그친다.
결국 수출이 성장의 관건으로 꼽힌다. 국내 펫푸드 수출량은 2018년 6833톤(t)에서 2024년 6만3955t으로 연평균 45.2% 증가했다. 가파른 성장세지만 아직 절대 규모는 크지 않다.
식품업체들이 펫사료 사업에 속속 뛰어드는 것은 내수 식품 시장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외식·배달 경쟁 심화로 가공식품 시장은 이미 포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라며 "매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신사업 발굴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면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가구가 늘면서 사료를 넘어 간식, 영양제, 기능성 처방식까지 소비가 고급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식품 대기업들이 이 시장에 비교적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는 점도 강점이다. 이미 대규모 원료 수급망과 냉장·냉동 물류 인프라, 위생·품질관리 시스템, 자체 연구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신뢰도도 무기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만들던 회사'라는 점에 소비자들이 높은 신뢰를 보인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경쟁력은 성분 신뢰도와 기능성, 그리고 해외 인증 확보 여부 등이 될 것"이라며 "국가별 사료 규제와 인증 기준에 대한 정보 제공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이 병행되면 산업 전체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