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갈등과 긴장으로 치닫는 가운데 한국은 최근 한중·한일 정상회담을 연달아 열고 외교 관계를 재정비하고 있다. 이를 통한 변화를 포착한 식품업계는 중국에선 현지 생산·유통을, 일본에는 수출 확대로 대응하는 '투트랙 공략'을 본격화하면서 외교로 훈훈해진 각국 시장에서 성장 기회를 찾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식품 안전·검역 협력 채널이 새로 마련되면서 중국 시장을 바라보는 식품기업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다만 이를 '수출 확대 신호'라기보다는 중국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제도적 리스크 관리 창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한국 식품 수출 시장이지만, 정치·외교적 변수 및 비관세 장벽에 따른 부담이 크다. 단순 수출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삼양·농심·오리온·CJ제일제당, 중국 현지 생산 박차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현지 생산·유통 중심 전략을 펼치는 대표적인 기업은 삼양식품(003230)이다. 삼양식품의 지난해 1~3분기 누적 기준 중국 매출은 4447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25.9%에 달한다. 삼양식품은 중국 저장성 자싱시에 첫 해외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투자 규모를 2072억원으로 늘리고 생산라인도 8개로 확대했다. 내년 1월 완공 후 생산 물량 전량을 중국 내수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농심(004370)은 상하이·선양·칭다오·연변 등 중국 내 4개 법인을 운영하면서 현지 생산과 유통망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익성 중심 전략으로 전환해 중국 사업 재정비에 나섰다. 특히 자사 대표 제품인 신라면을 공항·관광지 중심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CJ제일제당(097950)은 베이징·칭다오·요성·장먼 등에 생산 기지를 두고 비비고 브랜드를 내세운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오리온(271560)은 '오!감자', '초코파이 정(情)', '예감' 등 자사 주력 브랜드를 현지 소비자 취향에 맞춰 생산하는 전략을 강화할 방침이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의 삼감삼건(三减三健) 정책에 따라 저당·건강 간식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일러스트 = 챗gpt 달리

◇ 삼양·농심·대상, 일본 수출 확대에 방점

반면 일본은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구조'가 효율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물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현지 생산보다 수출이 비용·속도·유연성 면에서 모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한일 정상회담 이후 양국의 협력 기조와 함께 K콘텐츠 인기를 타고 K푸드에 대한 일본 내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삼양식품은 자사 대표 브랜드 '불닭볶음면'을 일본으로 수출해 시장을 키우고 있다. 불닭 시리즈는 최근 일본 내 누적 판매량 1억 개를 돌파했다. 일본 소비자 취향을 반영한 한정판 제품을 출시할 뿐 아니라 편의점과 대형마트, 돈키호테·이온(AEON) 등 주요 유통 채널을 통해 수출 물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농심은 일본 주요 백화점과 편집숍에서 자사 대표 브랜드 '신라면' 팝업스토어(임시 매장)와 체험형 매장을 운영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편의점·대형마트·드럭스토어·백화점 등 주요 유통 채널을 통해 판로를 확보하고 있다.

대상(001680)은 김치·장류·조미료·간편식을 국내에서 생산해 일본으로 수출한다. 일본 현지법인인 대상재팬은 생산보다 유통·물류·마케팅에 집중한다. 국내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일본 소비자에게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공급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업계에선 연이은 정상외교가 '외교 리스크 완화'라는 시그널을 줬지만 시장별 해법은 다르다고 본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상외교로 길이 열렸다고 해서 예전처럼 단순히 수출만 늘리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며 "각국 상황에 맞는 전략을 펼쳐야 K푸드도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한한령 등 정치적 변수에 따라 급변하는 시장이라 브랜드력이 충분히 검증된 기업의 현지 생산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일본은 상대적으로 정치 리스크가 적고 물류 효율이 높아 수출 전략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이어 "다만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판로를 만들려면 현지 소비 트렌드에 스며들기 위한 대응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