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소비와 일상을 빠르게 재편하는 가운데 식품업계가 소위 '근본이즘(根本+ism)' 제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최근 식품업계가 다이소와 협업해 선보인 '트렌드코리아 2026 기획전'이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빠르게 소모되는 유행·트렌드 대신 브랜드의 역사와 원형, 오래 축적된 신뢰를 전면에 내세워 소비 심리를 자극한 전략으로 해석한다.

다이소의 '트렌드코리아 2026 기획전'에서 선보인 초기 출시 패키지에 담긴 제품들. /아성다이소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근본이즘을 지향하는 식품사가 많아지는 추세다. 근본이즘은 AI시대 가속화의 반작용으로 전통·원조·인간다움 같은 '근본적 가치'를 다시 찾는 흐름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이를 올해의 핵심 소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꼽았다.

다이소와 식품업계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다이소는 '트렌드코리아 2026 기획전'에서 '국민 과자'로 불렸던 제품들의 초기 패키지를 복원한 제품 9종을 선보였다. 오리온(271560)의 초코파이·고래밥, 롯데웰푸드(280360)의 빼빼로, 크라운제과(264900)의 조리퐁·카라멜콘 땅콩·산도 딸기 크림치즈·빅파이, 해태제과식품(101530)의 에이스·맛동산 등은 모두 출시 초기 디자인 패키지로 제작됐다.

판매 성과도 거뒀다. 다이소 운영사 아성다이소에 따르면 트렌드코리아 2026 기획전에 출시한 제품 9종은 기획전 시작 직전주(2025년 12월 24~30일) 대비 매출이 50% 증가했다.

업계는 이번 협업의 핵심을 단순한 레트로(복고) 연출과는 다르다고 평가한다. 복원에 가깝기 때문이다. 과장된 그래픽이나 최신 디자인을 덧입히기보다 당시 로고 배치와 색감, 서체까지 최대한 그대로 복원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콘셉트를 소비자에게 설득하는 비용과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이미 각인된 기억에 기댄 근본은 별도 설명 없이도 모든 세대에 통하는 자산"이라고 했다.

일러스트 = 챗gpt 달리

다이소를 유통 채널로 선택한 건 고물가 시대의 소비 심리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다이소는 고물가 및 양극화 시대에 가성비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곳인 만큼, 과거 비교적 부담 없이 즐기던 과자를 소비하던 경험도 환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같은 패키지라도 프리미엄 채널에서 나왔거나 편의점 한정 수량으로 판매됐다면 기획 상품이나 굿즈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가격 부담 없이 집었던 기억을 자극하려면 다이소가 제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근본이즘은 다이소와 식품사의 협업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단종 제품을 복원하거나 브랜드 초기 정체성을 재해석한 제품을 출시하는 움직임이 잇따랐다. 농심(004370)은 60주년을 맞아 1975년 출시됐다가 1990년 단종된 초기 제품 '농심라면'을 재출시했고, 삼양식품(003230)은 국내 최초 라면의 정통성을 되짚고자 '삼양 1963' 우지라면을 선보였다. 롯데웰푸드도 과거 단종됐던 아이스크림 '대롱대롱'과 '엄마의 실수'를 재출시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불황기일수록 검증된 브랜드와 경험으로 회귀하려는 심리가 강해진다. 근본이즘은 이를 반영한 전략"이라며 "특히 다이소처럼 가성비 이미지가 강한 유통 채널과의 협업은 당시의 소비 경험까지 함께 소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기가 어려울수록 소비자들은 예전에 행복했던 시절의 경험을 찾게 된다. 브랜드의 기존 지식재산권(IP)은 이 욕구를 가장 효과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자산"이라며 "콘텐츠와 브랜드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보다 이미 긍정적인 인지도를 쌓은 브랜드 IP를 활용하는 전략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