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배우' 안성기가 지난 5일 별세했습니다. 향년 74세. 38년 동안 모델로 고인과 인연을 이어온 동서식품의 광고 전략이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한 브랜드와 한 모델이 이처럼 오래 동행한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故) 안성기 배우는 1983년 동서식품 모델로 발탁된 뒤 2021년까지 동서식품의 대표 제품 '맥심'을 비롯한 주요 커피 브랜드의 얼굴 역할을 했습니다. 고인은 단일 브랜드 최장수 모델로 꼽힙니다. 동서식품은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함께해 주셨던 시간에 감사드리며 고인의 뜻을 오래 기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고인이 맥심 커피 모델로 활동했던 1980~1990년대는 인스턴트커피와 믹스커피 제품이 대중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카페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전에 가정과 사무실에서 마시는 커피가 시장을 키웠습니다. 당시 가격·편의성 못지않은 핵심 경쟁력은 신뢰였습니다. 동서식품은 제품 설명 대신 여유·따뜻함 같은 정서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차분한 이미지를 가진 고인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 같은 동서식품의 장기 모델 기조는 이후로도 이어졌습니다. 이나영 배우는 2000년부터 2024년까지 맥심 모카골드 광고를 이끌면서 브랜드의 얼굴로 자리매김했고, 올해부터는 박보영 배우가 새로운 얼굴로 광고를 이끌고 있습니다. 캔 커피 '맥심 T.O.P'는 2008년부터 원빈 배우가 16년간 모델로 활동했고, 프리미엄 스틱커피 '카누'는 2011년부터 공유 배우와의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빠른 광고 모델 교체로 화제성을 꾀하기보다 익숙함과 신뢰를 브랜드 자산으로 쌓아온 셈입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모델을 선정할 때 제품·브랜드 이미지에 어울리는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한다"며 "모델 계약은 1년 단위로 진행하지만, 이후로도 광고 모델로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계속 연장한다"고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빠르게 트렌드가 바뀌는 광고 시장에서 대다수 브랜드가 화제성이나 신선함을 좇아 모델을 자주 교체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라고 평가합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동서식품은 모델을 브랜드 가치와 정서를 전달하는 존재로 여긴다"며 "믹스커피 브랜드 특유의 익숙함을 장기 모델 전략으로 극대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동서 믹스커피는 '일상에서 늘 마시는 커피'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소비자 저변을 넓혔습니다. 시장조사 업체 닐슨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동서식품의 국내 믹스커피 시장 점유율은 90.8%에 달합니다.
고인의 태도가 브랜드 신뢰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그는 오랜 시간 국민 배우 지위를 유지했으며, 본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상업 광고는 피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해 왔다고 합니다. 스페셜티·프리미엄 커피로 시장이 세분되는 상황에서 '익숙한 한 사람의 얼굴'이 주는 일관성이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를 높였다는 분석입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 기업과 같은 모델이 30년 이상 함께하면서 신뢰를 쌓은 사례는 보기 드물다"며 "빠르게 변하는 광고 시장에서 장기 협업이 브랜드 신뢰 축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상징하는 사례"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