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심장부로 불리는 오크빌(Oakville)을 지나면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1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오크빌 식료품점(Oakville Grocery)'이다.

1881년 문을 연 이 식료품점은 단순한 상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파 밸리가 아직 개척기였던 시절, 이곳은 농부와 상인, 초기 와인메이커들이 오가며 물자와 정보가 교환되던 생활의 거점이었다.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와 와인이 이곳을 통해 유통됐고, 새로운 재배 방식 등 나파 밸리의 미래를 바꾼 수많은 아이디어가 오갔다. 황무지에 가까웠던 나파 밸리가 오늘날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변모하기까지 모든 굴곡과 번영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산증인인 셈이다.

이 식료품점은 지금까지도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나파 밸리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꼽히는 조셉 펠프스(Joseph Phelps)가 한때 운영을 맡은 적이 있고, 미국 프리미엄 식료품 유통의 상징인 딘 앤 델루카(Dean & DeLuca)의 설립자 레슬리 러드(Leslie Rudd)가 운영한 시기도 있다. 전환점은 2019년 1월이었다. 오크빌 식료품점은 프랑스 와인 업계 3위 기업인 부아쎄 그룹의 미국 지사, 부아쎄 컬렉션(Boisset Collection)에 인수됐고, 현지 음식과 함께 와인을 소개하는 장소로 성격이 확장됐다.

부아쎄 컬렉션은 식료품점이 처음 문을 연 해를 기념해 '1881 나파(1881 Napa)'라는 와인 브랜드를 선보였다. 나파 밸리의 와인 산업을 일군 선구자들의 개척 정신을 기리고, 그 역사를 한 병의 와인에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부아쎄 컬렉션은 식료품점 바로 옆에서 '1881 나파 와인 역사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 나파 밸리 개척 정신의 원형을 보존하는 보물창고같은 곳이다. 19세기에 포도를 으깨던 투박한 압착기와 장인들의 손때가 묻은 오크통 제작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나파 밸리 내 여러 세부 산지(AVA)의 토양 샘플을 함께 소개하며, 산지별 차이가 와인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설명한다. 브랜드의 자체의 명성보다는 나파 밸리 전체 역사와 정체성을 이해하도록 돕는 공간이다.

그래픽=정서희

부아쎄 그룹은 프랑스 부르고뉴를 기반으로 성장한 가족 소유 와인 그룹이다. 쟝 끌로드 부아쎄(Jean-Claude Boisset)가 1961년 부르고뉴에서 와인 사업을 시작하며 설립된 그룹은, 현재 그의 아들인 쟝 샤를 부아쎄(Jean-Charles Boisset)가 이끌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을 아우르는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나파와 소노마를 중심으로 다수의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1881 나파 브랜드 역시 쟝 샤를 부아쎄가 주도해 선보인 프로젝트다. 프랑스의 정교한 양조 전통과 미국의 역동적인 개척 정신을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나파 밸리의 고전적 가치가 와인 속에 녹아있는 셈이다.

1881 나파 카베르네 소비뇽은 나파 밸리 여러 지역에서 수확한 카베르네 소비뇽(91%)에 쁘띠 시라(7%), 진판델(2%)을 블렌딩해 만든 레드 와인이다. 언덕배기 포도밭과 계곡 평지 포도밭의 과실을 함께 사용해, 나파 밸리의 지형과 기후가 만들어내는 다양성과 복합성을 표현한다. 단일 포도밭의 개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산지 전반의 균형과 구조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숙성 과정에서는 전체 와인의 약 20%를 미국산 오크 배럴에서 숙성해, 오크의 존재감을 절제된 방식으로 더했다.

와인에서는 검붉은 과실과 건포도의 농익은 향이 먼저 느껴지고, 뒤이어 가죽과 삼나무, 은은한 향신료 뉘앙스가 겹쳐진다. 입안에서는 블랙베리와 커런트의 진한 과실 풍미가 갈색 설탕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단맛과 어우러지며 균형을 이룬다. 붉은 육류 요리뿐 아니라 피자와 파스타, 다양한 치즈, 양념이 진한 갈비찜과도 잘 어울린다.

이 와인은 와인 스펙테이터 90점(2018 빈티지), 2023 아시안 와인 트로피 금상(2019 빈티지), 2023년과 2025년 대한민국 주류대상 신대륙 레드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와인투유코리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