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와인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뉴질랜드 와인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미국·이탈리아 등 전통 와인 강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줄어든 반면, 뉴질랜드는 수입 물량과 금액이 모두 늘며 국내 와인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모습이다. 소비자들의 화이트 와인 선호 현상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음식에 곁들이는 뉴질랜드 와인./뉴질랜드관광청 제공

30일 한국무역협회(KITA)의 수입주류통계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11월 기준 주류 수입액은 총 8억6830만달러(약 1조2500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9억1670만달러) 대비 5%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주류 수입량은 3470만케이스로 전년(3375만케이스)보다 3% 늘었다. 수입액은 줄고 물량은 늘면서 병당 평균 단가가 낮아진 셈이다.

와인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같은 기간 와인 수입액은 3억9615만달러(5670억원)로 전체 주류 수입액의 46%를 차지했지만, 전년 대비 6% 감소했다. 반면 수입 물량은 574만케이스로 10% 증가했다. 이에 따라 병당 평균 단가는 2024년 6.75달러(9700원)에서 2025년 5.75달러(8200원)로 15% 낮아졌다.

이러한 침체기 속에 와인 수입 국가별 현황을 보면 뉴질랜드 와인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난 1~11월 기준 뉴질랜드와 스페인, 포르투갈 와인만 수입액과 물량이 모두 전년 대비 증가했다. 뉴질랜드는 전년 동기 대비 금액 기준 57%, 물량 기준 86%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국가별 수입 순위(금액 기준)에서 작년 6위였던 뉴질랜드는 스페인을 밀어내고 5위로 올라섰다. 물량 기준으로는 미국과 호주를 제치고 7위에서 5위로 두 계단 상승했다.

반면 전통 강국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프랑스 와인 수입액은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미국(-19%), 이탈리아(-6%), 칠레(-5%) 등도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국가별 와인 수입 비중은 금액 기준으로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칠레, 뉴질랜드 순이다. 물량 기준으로는 칠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뉴질랜드 순이다.

와인 종류별로 보면 소비 흐름의 변화가 더욱 분명해진다. 수입액 기준 와인 비중은 레드 와인이 48%로 가장 크고, 화이트 와인 25%, 스파클링 와인 19% 순이다. 하지만 전년 동기 대비 레드 와인은 수입액이 14% 줄었고, 스파클링 와인도 9% 감소했다. 반면 화이트 와인은 수입액이 13% 증가했고, 수입 물량은 25% 늘며 유일하게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뉴질랜드는 대표 품종인 '소비뇽 블랑'을 중심으로 한 화이트 와인 강국이다. 소비뇽 블랑은 프랑스 보르도가 원산지인 품종이지만, 뉴질랜드 토양과 기후에서 재배되면 보르도와는 다른 향과 스타일을 보여준다. 소비자들이 보다 가볍고 산뜻한 음용을 선호하고, 혼술과 일상 소비가 늘어나면서 화이트 와인을 찾는 경향이 커진 것도 뉴질랜드 와인 성장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뉴질랜드 화이트 와인 포트폴리오를 대거 확보한 수입사들은 어려운 와인 시장 환경에서도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 금양인터내셔날이 2024년 3월 국내에 선보인 크래기 레인지는 지난 11월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80% 증가했다. '크래기 레인지 테 무나 소비뇽 블랑'은 같은 기간 매출이 103% 늘었다. 크래기 레인지는 일반적인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보다 상위 가격대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데일리 와인급 제품 가격이 약 5만원대부터 형성돼 있다.

프리미엄 와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라파우라 스프링스의 경우 데일리급 와인 매출은 지난 11월 기준 전년 대비 16% 증가한 반면, 말보로 소지역의 특성과 개성을 담은 '로헤(ROHE)', 최상급 재배지만을 선별해 만든 '싱글 빈야드'라인은 118%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이 밖에도 롯데칠성(005300)음료의 '킴 크로포드', 하이트진로(000080) '드라이랜드', 신세계L&B '생클레어', 아영FBC의 '오이스터 베이', 나라셀라(405920) '줄스테일러', 신동와인의 '빌라 마리아' 등 주요 수입사들이 뉴질랜드 와인 브랜드를 앞세워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뉴질랜드 와인의 성장이 단기적인 유행이라기보다, 화이트 와인 소비 확대와 맞물린 구조적인 변화의 결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뉴질랜드 와인은 소비자들의 화이트 와인 선호와 맞물려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했고, 앞으로도 여전히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라며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산지 이미지와 스타일이 분명한 와인을 찾는 소비가 늘어난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