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중심부 끼안띠 클라시코에서 생산된 와인에는 '검은 수탉' 로고가 새겨져 있다. 검은 수탉의 전설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탈리아 중부에서는 토스카나의 패권을 두고 인접한 두 도시 피렌체와 시에나가 오랜 기간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거듭되는 유혈 사태에 지친 두 도시는 기발하면서도 평화로운 해결책에 합의했다. 각 도시에서 기사가 새벽 수탉의 울음소리와 함께 출발해, 두 기사가 만나는 지점을 국경선으로 정하기로 한 것이다.

시에나는 행운을 빌며 하얀 수탉을 선택해 모이를 듬뿍 주며 정성껏 돌봤다. 반면 피렌체는 검은 수탉을 좁은 새장에 가두고 며칠간 굶겨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결전의 날 새벽, 배고픔에 지쳐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울부짖은 것은 피렌체의 검은 수탉이었다. 하얀 수탉보다 훨씬 일찍 울음소리를 낸 덕분에 피렌체의 기사는 시에나 기사보다 앞선 지점까지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오늘날 끼안띠 클라시코 대부분의 땅이 피렌체령으로 남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이 승리의 역사는 1924년 지역 생산자들이 끼안띠 클라시코 와인의 정체성과 품질을 지키기 위해 협회를 결성하며 공식적인 문장으로 채택됐다. 끼안띠 지역에는 8개의 세부 생산지가 있는데, 일반 끼안띠 와인과 달리 엄격한 품질 규정을 준수하는 끼안띠 클라시코 와인만이 검은 수탉 로고를 붙일 수 있다. 원산지와 품질을 보증하는 제도적 표시이면서 피렌체 군대의 용맹함이 담긴 승리의 기록이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끝낸 평화의 상징이기도 한 셈이다.

검은 수탉의 훈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생산자 중 하나가 바로 '파토리아 디 로르나노(Fattoria di Lornano)'다. 로르나노는 1904년 설립 이후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1924년 끼안띠 클라시코 협회 설립을 주도한 33개 생산자 가운데 한 곳이다. 끼안띠 클라시코 산지의 전통과 정체성을 비교적 온전히 간직한 생산자로 평가받는다.

그래픽=손민균

로르나노가 생산하는 와인 중 '레 반디트(Le Bandite)'라는 이름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레 반디트는 이탈리아어로 출입이나 이용이 제한된 구역을 뜻한다. 과거 사냥이 엄격히 금지됐던 보존 구역에서 자란 최상급 포도만을 선별해 와인을 빚는다. 특히 로르나노는 레 반디트를 산지오베제 품종 100%로 양조한다. 일반적으로 끼안띠 클라시코는 산지오베제 품종을 최소 80% 이상 사용하고 나머지 20%는 다른 품종을 섞을 수 있는데, 100%를 고집한다는 것은 토스카나 토착 품종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생산자의 자부심을 뜻한다.

로르나노가 위치한 끼안띠 클라시코 북부 언덕 지대는 석회질과 점토가 섞인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테루아는 산지오베제 특유의 산미를 단단하고 균형감 있게 표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정성껏 줄기를 제거한 포도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약 26도의 온도로 25일간 껍질과 함께 침용 과정을 거친다. 이후 날카로운 산미를 부드럽게 다듬는 말산 발효를 거쳐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20개월, 병 숙성 6개월을 거쳐 출시된다. 규정상 리제르바 등급은 수확 연도로부터 최소 24개월의 숙성을 거쳐야 하는데, 레 반디트는 그 이상 숙성 기간을 갖는 것이다.

깊고 선명한 루비 레드 빛을 띤다. 코끝을 스치는 블랙베리와 라즈베리 등 익은 야생 베리의 향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뒤이어 말린 꽃과 감초 향이 이어지며 은은한 담배 향이 복합적인 풍미를 더한다. 입안을 꽉 채우는 탄탄한 구조감과 풍부한 타닌, 그리고 산지오베제 고유의 세련되고 신선한 산미가 긴장감을 유지하며 마지막에 느껴지는 오렌지 향이 긴 여운을 남긴다.

2020 빈티지는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92점, 디캔터로부터 94점을 받았다.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구대륙 레드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총 4차례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레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