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전자 상거래) 업체 11번가가 SK플래닛 자회사로 다시 편입됐다. 2018년 분사한 후 약 7년 만이다. SK플래닛은 돌아온 11번가에 600억원 추가 출자도 결정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이커머스 1위 쿠팡의 입지가 불리해진 상황에서 11번가가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커머스 업체 11번가가 SK플래닛 자회사로 다시 돌아왔다. 2018년 분사한 이후 약 7년 만이다./조선DB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SK플래닛은 지난 2일 자회사 11번가의 6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공시했다. 이는 SK플레닛이 SK스퀘어와 나일홀딩스 등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한 이후 진행된 추가 유상증자다. 이에 따라 SK플래닛의 11번가 총출자액은 5346억원으로 늘었다.

SK플래닛과 11번가는 그룹 내 시너지 강화에 힘쓸 계획이다. SK플래닛이 주요 서비스로 운영하고 있는 마일리지 멤버십 플랫폼 OK캐쉬백과 시너지를 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들은 11번가가 개인정보 대규모 유출로 쿠팡의 입지가 불리해진 상황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는 각각 회생절차와 파산 절차를 밟아 현재 시장에서 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11번가가 부침을 겪다가 다시 진열을 재정비하는 모습이다. 2018년만 하더라도 쿠팡과 티몬, 위메프, 11번가의 격차는 심하지 않았고,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지위였다.

이커머스 11번가의 출발은 사실 나쁘지 않았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쿠팡에 투자한 만큼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11번가도 넉넉한 현금성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기 위해 SK플래닛에 부채를 넘기고 현금성 자산만 가지고 독립했었기 때문이다. 11번가는 투자금을 포함해 현금성 자산만 5000억원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랬던 11번가와 쿠팡의 차이를 가른 것은 물류에 대한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한 경영 판단이었다. 쿠팡은 '계획된 적자'를 내세우면서 물류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멤버십으로 소비자를 장기적으로 묶어뒀다. 반면 11번가는 초저가 마케팅 등 할인 행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결과적으로 이커머스와 플랫폼 기업에 대한 학습이 부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당시는 투자받은 금액을 통한 마케팅에 집중해 단기 성과를 올리는 것에 더 집중했다"며 "돌이켜보면 단기 실적에만 눈이 어두워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했다. 11번가의 전략 변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격차는 상당하다. 그 사이 11번가는 누적 손실 4400억원을 기록했다. 한때 경쟁사로 불렸던 쿠팡과는 이제 순위를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쿠팡은 2022년 3분기에 창사 12년 만에 첫 분기 영업 흑자를 달성했다. 2023년엔 창사 14년 만에 첫 연간 흑자를 냈다.

이렇게 격차가 큰 데도 11번가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있는 것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의 독점적 사업 구도를 깨야만 경쟁이 이뤄지고 견제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와서다. 현재로선 쿠팡에 대적할 이커머스 기업이 없다. 소비자들의 개인정보를 대규모로 유출하고도 쿠팡이 배짱 대응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소비자나 판매자(셀러) 모두에게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11번가 등 다른 이커머스 기업에 달렸다"며 "쿠팡과 비슷한 서비스를 타사에서 제공한다면 갈아탈 의향을 가진 판매자와 소비자가 생긴 상황"이라고 했다.

아울러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대응에 11번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온플법이란 네이버, 카카오, 구글 등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고 입점업체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 자사 우대 금지, 수수료 상한제 등이 온플법 테두리에서 논의되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은 반도체와 통신을 양대 축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적당히 자리 잡게 한 다음에 사모펀드에 되판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면서 "다만 그런 작업(대관)에 나서서는 지금과 다른 11번가의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어떤 식으로 사업이 나설지 지켜봐야 하는 대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