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원화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먹거리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밀가루와 커피 등 수입 원자재 가격이 환율 상승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내년에도 식품 가격 상승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2.6% 상승하며 5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4월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같은 기간 원·달러 평균 환율은 8월 1380원대에서 11월 1450원대까지 오르며 수입 원자재 가격을 직접적으로 밀어 올렸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 대비 1.3원 오른 1484.9원으로 출발해 1453원에 마감했다.
환율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로 전이된다. 이미 10월과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대를 기록한 데다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2.9%까지 올라 체감 물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품목은 커피다. 국제 원두 시세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환율까지 오르면서 수입 가격 부담이 크게 확대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을 100으로 했을 때 지난달 커피 수입물가지수는 달러화 기준 307.12, 원화 기준 379.71을 기록했다. 달러 기준으로는 수입 가격이 약 3배 수준으로 오른 반면, 원화 기준으로는 환율 영향이 더해지며 상승 폭이 더 커졌다.
커피는 원두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국제 시세와 환율 변동이 국내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잇따라 가격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이달 음료 기본 용량을 14온스(414㎖)에서 18온스(532㎖)로 늘리는 대신 음료 31종의 기본 가격을 평균 297원 인상했다. 바나프레소 역시 내년 1월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 포장 가격을 1800원에서 2000원으로 200원 올린다.
앞서 지난 1월 스타벅스·할리스·폴 바셋을 시작으로, 2월 컴포즈커피, 3월 투썸플레이스 등 주요 커피 브랜드들이 잇따라 가격 인상에 나선 바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커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달 소고기 수입물가지수는 달러 기준 129.99, 원화 기준 160.57로 집계됐다. 달러 기준으로는 약 30% 상승했다. 원화 기준으로는 환율 영향으로 상승 폭이 더 컸다. 같은 기간 옥수수는 달러 기준으로 6% 상승했지만 원화 기준으로는 35% 올랐고, 밀은 달러 기준 가격이 소폭 하락했음에도 원화 기준으로는 22% 상승했다. 환율 상승이 수입 원자재 전반의 체감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식품·유통업계는 이미 고환율 영향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에만 수십 곳의 식품기업이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농심은 라면과 스낵류 17개 브랜드의 출고가를 평균 7.2% 인상했고, 오뚜기도 라면 16개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7.5% 올렸다.
내년에도 가격 인상 흐름은 이어질 전망이다.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는 편의점 자체 브랜드(PB) 상품 가격이 오른다. 세븐일레븐은 과자와 음료 등 40여 종의 PB 상품 가격을 최대 25% 인상하기로 했다. '누네띠네'는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착한콘칩'은 1000원에서 1200원으로 오른다. '고메버터팝콘' 역시 1800원에서 2000원으로 인상된다. GS25도 '영화관팝콘'과 '버터갈릭팝콘' 가격을 1700원에서 1800원으로 올릴 예정이다.
다만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의 물가 관리 기조가 강화될 가능성이 커 업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원가 부담은 커지고 있지만, 가격 인상에 나설 경우 정부와 여론의 압박을 동시에 받을 수 있어서다.
국세청은 전날 "가격 담합, 원가 하락 미반영, 제품 용량 축소 등 방식으로 소비자 부담을 키우며 부당 이익을 취한 탈세자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프랜차이즈 업체 9곳이 포함돼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경우 원가 부담은 불가피하지만, 당분간은 가격 조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원가와 정책 사이에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