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업계가 장기화하는 경기 불황과 소비 심리 위축이라는 이중고를 극복하기 위해 체질 개선에 나섰다. 수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베테랑 수장을 교체하고,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등 인력 구조를 효율화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내년에는 해외 사업에도 공을 들일 전망이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내 주류코너에 진열된 테라와 켈리 맥주. /뉴스1

◇ 주류업계 체질 개선 한창

22일 주류 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000080)는 이달 초 정기 임원 인사에서 장인섭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2011년부터 14년간 하이트진로를 이끌어온 김인규 대표는 고문직을 맡게 됐다. 마케팅·영업 전선에서 활약해 온 김 대표는 그간 4차례 재신임을 받았으며, 박문덕 회장의 깊은 신뢰를 받은 인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이번 대표 교체를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시장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측은 이번 인사와 관련, "미래 성장 전략과 해외 시장 확대를 위한 결정"이라고 전했다.

장 내정자는 1995년 진로 입사 후 정책팀장, 관리부문 상무, 총괄 전무를 거쳤다. 그가 대표로 취임하면 조직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기존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난 신규 성장축 발굴이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오비맥주는 지난 10월 1982년생 저우유 대표를 신규 선임했다. 40대 대표 선임을 통해 조직 내부의 세대교체와 변화를 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저우유 대표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으로 이전까지 오비맥주 이사회 멤버가 아니었다. 기존 벨기에 출신 벤 베르하르트(배하준) 대표와 함께 각자 대표 체제로 역할을 수행한다.

조직 슬림화를 위한 인력 감축도 진행 중이다. 롯데칠성(005300)음료는 지난달 창사 75년 만에 처음으로 주류 부문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근속 10년 이상, 1980년 이전 출생자가 대상이다. 실적 하락세에 따른 비용 절감과 인력 구조 효율화의 일환이다.

실제로 주류 소비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출고량은 163만7210톤(t), 희석식 소주 출고량은 81만5712톤으로 전년 대비 각각 3%, 3.4% 감소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2024 알코올 통계자료집'에 따르면 15세 이상 1인당 국산 주류 소비량은 2015년 9.1리터(L)에서 2022년 7.1L로 7년 사이 약 15% 줄어들었다. 2022년 8L로 소폭 반등하는 데 그쳤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내에 위치한 한 마트에서 베트남 소비자들이 참이슬과 진로24를 살펴보고 있다./하이트진로 제공

◇ 해외 사업 확장 노력

주요 주류 업체들의 3분기 실적 지표 역시 하향 곡선을 그렸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3분기 연결기준 매출 6695억원, 영업이익 54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4%, 22.5% 감소했다. 같은 기간 롯데칠성음료 주류 부문 매출은 193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 줄었다. 전체 매출 중 주류 비중은 19.7%를 기록하며 13년 만에 20%선 아래로 내려갔다. 다만 영업이익은 비용절감 노력 효과로 전년 동기 대비 139억원으로 43% 증가했다.

오비맥주는 비상장사로 정확한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모회사 AB인베브가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한국 시장 매출의 한 자릿수 후반대 감소를 언급해 3분기에도 부진이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하이트진로는 '소주 세계화'를 중장기 전략으로 삼고 해외 생산 기반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월 베트남 타이빈성 경제특구에 첫 해외 생산 공장을 착공,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급증하는 동남아시아 수요에 대응하고 물류비를 절감해 현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이트진로는 해외법인 9곳을 두고 있지만 생산공장을 짓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제로 슈거 소주인 '새로'와 과일소주 '순하리'를 필두로 북미와 동남아시아 시장 판로 개척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법인 '롯데 베버리지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현지 대형 유통 채널 입점을 확대하고 있다.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에서는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생산 및 유통망을 강화하고 있다. 주류 수출 전용 브랜드 라인업을 다변화해 전체 매출 내 수출 비중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모기업인 세계 최대 맥주 기업 AB인베브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수익성 개선에 나서고 있다. 카스 등 기존 맥주 브랜드의 아시아권 수출을 지속하는 동시에,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수출 전용 소주 브랜드 '건배짠'를 론칭하며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맥주 밖으로 확장했다.

장지혜 DS증권 연구원은 "내년에도 국내 주류 시장은 경기 둔화 및 주류 소비트렌드 변화에 따라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해외 성장이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하이트진로는 내년 말 완공 예정인 베트남공장을 통해 해외 매출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며 내수 부진을 상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칠성은 내수 의존적이었던 사업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며 "내년부터는 해외 법인을 중심으로 한 실적 성장이 가시화될 전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