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쇼핑의 필수 코스로 꼽히던 주류가 최근 들어 예전만큼의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 면세점을 중심으로 '술을 굳이 면세점에서 살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분위기입니다.

고환율(원화 기치 하락)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형마트와 편의점을 중심으로 주류 상시 할인 행사가 잦아지면서, 면세점과 국내 유통 채널 간 가격 격차가 눈에 띄게 줄어든 영향 탓입니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주류 소비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도 변화를 키우는 요인으로 언급됩니다.

신라면세점이 작년 7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연 '주류 플래그십 스토어'. /신라호텔 제공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면세점 판매 물품 중 주류는 눈에 띄게 줄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기준 신라면세점의 온라인 일간 판매 순위를 살펴보면, 전체 상품 가운데 4위에 '조니워커 블루', 5위에 '카발란 비노바리끄 솔리스트'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반면 신세계면세점의 경우 10위권 내에 주류 제품이 단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고, 롯데면세점에서는 조니워커 블루가 5위에 올랐습니다.

이는 지난해와는 다른 흐름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발베니, 달모어 등 프리미엄 위스키 브랜드는 물론, 양허 등 중국 주류까지 온라인 면세점 판매 상위 10위권에 다수 포함됐습니다. 업계에서는 "온라인 면세점에서 주류 존재감이 전반적으로 약해졌다"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유는 가격입니다. 온라인 면세점에서 술을 구입하면 출국 전에 주문하고 공항 인도장에서 수령해야 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내 유통가와 가격을 비교한 뒤 정말 이득인지를 따져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격과 구성 경쟁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환율도 올랐습니다. 19일 기준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478.9원에 마감했습니다.

그동안 고가 위스키와 프리미엄 와인은 가격이 높을수록 세금이 차지하는 금액도 커지기 때문에 면세점에서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면세점 주류가 국내 소매가 대비 확연히 저렴하다는 공식이 통했던 셈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와인과 위스키 할인 행사가 상시화되면서 이 같은 공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중저가 위스키의 경우 오히려 마트 행사 가격이 더 저렴한 사례도 있습니다.

예컨대 롯데마트는 오는 24일까지 디아지오 위스키 10종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인데요, '조니워커 블랙 루비'는 개당 6만4900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같은 제품의 신라면세점 판매가는 7만7449원입니다.

추가 할인 조건까지 고려하면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롯데마트에서는 행사 상품을 2개 이상 구매할 경우 추가 할인을 합니다. '조니워커 블랙'은 개당 가격이 3만8360원까지 내려갑니다. 반면 신라면세점에서는 최대 할인을 적용해도 한 병당 4만4576원 수준입니다.

소비 트렌드 변화도 면세점 주류 부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최근 주류 소비는 고가 제품을 수집하듯 구매하기보다는, 일상에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저도주와 데일리 와인, 개성 있는 소규모 브랜드로 이동하는 흐름입니다. 집에서 가볍게 즐길 술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면세점 주류 구성은 여전히 고도수 위스키나 글로벌 대형 브랜드 중심에 머물러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가 술을 기념품처럼 사서 보관하는 소비를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면세점 주류 카테고리의 존재감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행 동선에서의 불편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출국 시 면세점에서 술을 구입하면 그 순간부터 해당 제품을 계속 들고 다녀야 합니다. 해외에서 마시지 않고 다시 국내로 반입할 경우에는 주류 면세 한도도 고려해야 합니다. 현재 기준으로 1인당 2리터 이하, 미화 400달러 이하까지 면세가 적용됩니다. 지난 3월부터 병수 제한은 폐지됐지만, 금액과 용량 기준은 여전히 부담입니다.

한 소비자는 "해외 리쿼숍에서 구입하는 편이 더 저렴한 경우도 있다"라며 "편리함을 생각하면 입국 시 현지 면세점이나 항공사 면세점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주류의 매력도 하락은 단순히 소비 심리 위축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가격 구조, 유통 환경, 소비 방식 전반이 바뀌면서 면세점에서 술을 사야 할 이유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면세점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대응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