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앱 수수료 상한제가 정치권 안팎에서 다시 힘을 받는 분위기다. 최근 발생한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전반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배달 플랫폼 수수료 구조를 둘러싼 기류가 달라진 것이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가 이번엔 법제화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그래픽=정서희

18일 정치권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의 3370만건에 달하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플랫폼사(社)의 책임과 통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엄격해지고 있다. 사실상 플랫폼이 생활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넘어 플랫폼사의 자율에만 맡겨도 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역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발의된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관련 법안은 제22대 국회에 발의된 것만 10여 건이다. 대표적인 법안은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발의한 '음식 배달 플랫폼 서비스 이용료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배달 플랫폼 사업자가 영세 자영업자에게 부당한 중개·결제수수료를 부과하면 연 매출의 최대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같은 당 소속인 이강일 의원이 발의한 '배달 플랫폼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엔 플랫폼 사업자가 입점업체에 부과하는 중개수수료와 결제수수료, 광고비의 상한선을 지정하고 제한 기준을 어겼을 경우 매출액의 3% 이내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플랫폼 사업자가 부과한 배달비·수수료·광고비 등의 합계가 주문 매출액의 15%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게 골자다.

이처럼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시장 자율'과 '혁신 보장'이라는 명분하에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달·플랫폼 업계도 수수료 규제가 서비스를 축소하고 혁신을 저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용 부담이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일러스트 = 챗gpt 달리

다만 최근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를 둘러싼 정치권 기류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는 플랫폼의 책임성과 투명성 문제를 보다 엄격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플랫폼의 자율에만 맡겨두기엔 한계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잇따르면서 배달앱 수수료 문제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정무위 소속 여당 관계자는 "플랫폼이 사실상 필수 유통망으로 기능하는 상황에서 자율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수수료 구조에 대한 최소한의 규칙은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당 관계자는 "플랫폼 수수료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만 예견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업계도 이런 분위기를 주목하고 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배달·플랫폼 수수료 구조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한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지점이 적지 않다"면서도 "쿠팡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전반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이 '성장·혁신 산업'에서 '관리·감독 대상'으로 옮겨가면서 과거보다 법제화 가능성이 높아진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이어 "단기간에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더 이상 미뤄두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플랫폼 규제에 대한 국민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에서 관련 논의를 계속 미루는 건 여야 모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여야가 최소한 합의가 가능한 수준의 규제 방안부터 입법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구체적인 규제 방식이나 후속 조치 등 관련 입법 논의는 내년 1~3월 사이 상당 부분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