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식품 업계의 밀가루 가격 담합 의혹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11일 CJ제일제당(097950)과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본사를 압수수색 했습니다. 설탕값 담합에 이은 고강도 조사가 이어지는 셈입니다. 식품업계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국무회의에서 식품업계의 담합과 독점을 고물가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강력한 대응을 주문한 데 따른 조치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밀 가격 상승 원인에 대해 기업들은 일단 함구하고 있습니다. 설탕 가격 담합이 적발된 상황에서 더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심스레 국산 밀 산업 육성을 실패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물가 상승을 이유로 기업만 잡고 있다는 취지에서입니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020년에 수립한 '제1차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은 사실상 실패했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는 밀 자급률을 2025년까지 5%로 높이고 생산량을 12만톤(t)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였지만, 밀 자급률은 2020년이나 2025년이나 1%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8kg 수준으로 쌀(56.4kg)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곡물입니다. 그런데 밀은 거의 대부분인 9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국제 밀 가격과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에 가격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수입 밀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도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오르면 당연히 밀 구매 비용은 오른다"고 말합니다. 최근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470원대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연평균 환율(1394.97원)보다 높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시간만 보낸다면 앞으로도 밀 자급률이 오르긴 요원하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밀 자급률을 10%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지만, 아직 생산-가공-유통 등 그 어느 분야에서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탓입니다.
예를 들어 생산 측면에서는 농가에 작물 재배를 독려해야 하고 이를 위한 인센티브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데, 내년도 계획된 국산 밀 비축 물량은 오히려 줄어든 상태입니다. 농식품부는 내년에 국산 밀 2만t을 비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올해 물량(2만3000t) 대비 13% 감소한 수준입니다.
가공 부문 상황도 비슷합니다. 여러 종류의 밀가루를 섞어 원하는 맛이나 식감, 품질을 얻기 위한 정부의 '밀 블렌딩 전용 시설 건립'도 요원한 상황입니다. 건립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나마 유통 부문 상황은 좀 낫습니다. 기업들의 참여 덕분입니다. 국산 밀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부분을 기업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으로 SPC그룹은 2008년 '밀다원' 인수부터 시작해 파리바게뜨, 삼립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국산 밀을 활용한 베이커리, 호떡, 만쥬(화과자) 등을 출시하면서 밀 자급률 상승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국산 밀을 활용해 식빵과 바게트, 크루아상을 만들려는 노력도 기업들 덕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르빵(Le Pain) 챔피언십'이 대표적입니다. 르빵 챔피언십은 프랑스 대사관과 프랑스 제빵연합회 등이 후원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제빵 경연대회입니다.
이 대회 총괄은 베이커리 푸드테크 기업 '르빵'의 임태언 셰프가 맡고 있습니다. 임 셰프는 "한국 밀의 매력을 알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해 올해 우리밀 베이커리 대회 부문을 기획했고 내년엔 프랑스 현지에서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를 열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국산 밀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이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밀 가격 상승을 기업 문제로만 국한시키려는 정부에게 할 말은 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때가 좋지 않아 대놓고 말하지는 못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빵플레이션(빵 가격 상승을 뜻하는 말)과 밀 가격 요동의 원인이 정말 기업의 담합 탓뿐이었을까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