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이 수치화·정보화되고 인공지능(AI)이 모든 지식을 바탕으로 답을 제시하는 시대다. 그뿐이 아니다. TV를 사려는데 TV 기술이 브랜드에 따라 천차만별인 시대는 이제 지났다. 바야흐로 성장은 거의 멈춰 섰고 기술 발전 속도 또한 거기서 거기인 날들이다.

기업 경영자들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데, 도무지 성장 둔화를 타개할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호소다 다카히로 일본 TBWA 수석 크리에이티브 오피서(CCO)가 답해왔다. 지난 11월 한국에서 출간된 '더 센스 - 당신도 센스가 있다'를 통해서다. 호소다 CCO는 기업 브랜딩뿐 아니라 상품부터 경영 콘셉트까지 폭넓게 개발해 왔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조선비즈와 만난 호소다 CCO는 센스의 힘과 센스로 경영 호실적을 만들었던 사례, 센스있게 일하기 위한 훈련법을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호소다 다카히로 TBWA 수석 크리에이티브 오피서(CCO). 그는 지난 11월 한국에서 '더 센스 - 당신도 센스가 있다'를 출간했다./롱블랙 제공

─센스를 키워드로 하는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땐 카피라이터로서 카피에만 신경을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상품 콘셉트부터 출시 목적까지 관여하게 되면서 어떻게 성공하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작년 1월에 '컨셉(콘셉트)수업'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다. 그때 핵심 단어(키워드)로 브랜딩과 키워드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걸 잘하려면 센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센스는 참 언어화하기가 어려운 것이라 시간이 좀 걸렸다. 다르게 보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한국과 일본의 국경을 넘어서 쓸 수 있는 단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센스가 왜 중요한가.

"일본 회사 생활에 있어서 센스가 좋다는 말은 엄청난 칭찬이다. 모든 것이 언어로 표기된 매뉴얼대로 따른다고 센스 있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매뉴얼에 쓰여 있지 않은 손짓 등이 뒤따라 줘야 한다. 회사 차원에선 성공적인 경영을 의미한다. 매뉴얼은 AI가 담당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관리되고 AI가 이를 보기 좋게 정리해 주는 시대다. 경영 현장에서 승부는 AI가 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뭔지 모르겠는데, 거기 좋더라, 그 제품 좋더라, 즉 '센스가 좋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어떤 상품이 담은 기술이 큰 차이가 없고 성장이 멈춘 시대라 더욱더 그렇다."

─실제 감성 기반으로 성과를 낸 기업 사례는.

"힐튼호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호텔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인데 소비자 만족도를 올리기 위해 분위기도 개선하고 식재료도 바꾸고 유명 셰프도 채용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소비자 만족도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서 고객 여정을 감정에 기반해서 고민해 봤다. 언제 가장 소비자의 감정 흥분도가 하락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조사해 보니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메뉴를 시키고 함께 사진을 찍은 직후였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아서'였다. 호텔 조명은 대부분 어둡다. 사진이 예쁘게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다. 웨이터가 사진을 찍어줬는데 이걸 누군가에게 공유하기 싫은 사진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호텔은 '웨이터그래퍼'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웨이터에게 사진 잘 찍는 법을 가르치고 인증서를 줬다. 교육이 쌓였더니 소비자 만족도가 올라갔다. 앞으로 경영자와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기분이나 감각을 기반으로 수를 내는 게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논리적인 해결책은 AI에게 답을 내달라고 하면 된다."

─많은 예산을 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없나.

"한 자동차 회사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엔진 소리'가 특징으로 꼽히는 고급차 회사다. 차량 인계를 위해 예산을 많이 들여 비싼 쇼룸을 만들었다. 최고급 소파와 조명으로 무장된 아주 우아한 환경에서 차량을 인계받게 했다. 고소득자는 당연히 이렇게 대접받는 것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해 만든 공간이다.

그런데 이 회사 대표이사가 뭔가 마음에 걸린다고 해 공간을 재검토했다. 그는 엔진이 강점인 차를 다루는 곳이고, 소비자는 결국 그런 감각적인 소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엔지니어가 공장에서 소비자에게 차를 인계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결국은 이게 통했다. 대표이사의 센스가 좋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고급 쇼룸이지만 뭔가 빠졌다 싶은 걸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있었다. 대표이사도 이제 이런 센스가 필요하다."

─숫자(실적)로 증명되는 순간까지는 얼마나 걸리나.

"일반적으로 6개월 정도인데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결과물이 생길 때까지 버틸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단기 성과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소비자 만족도가 단단하게 쌓여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준다. 할인쿠폰 등을 뿌려서 단기 성과를 높이는 것은 우리가 식사 후에 혈당 스파이크가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정도의 효과다. 감성, 센스를 중심으로 한 변화는 소비자 만족이라는 근본을 건드린다."

─최근 가장 신경 쓰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일본 후쿠오카 오이타현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산리오리조트를 만들 계획이다. 2030년 정도에 완공하는 게 목표다. 현재는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다. 이곳에 오는 누구나 천진난만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디즈니리조트와는 좀 다르게 만들기 위해 과정을 설계하고 있다. 디즈니리조트는 '회사가 만든 걸 전부 즐기고 가세요'와 같은 공급자 개념이 있다. 이를 바꿔보고 싶다."

센스를 키우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감각과 논리를 오가는 생각 흐름을 반복해야 한다. 상품의 장점을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말고 '홀린다', '마음속 깊이 감동을 준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반복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단점도 감각적인 표현으로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래된 브랜드의 경우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생각해야 한다. '이 브랜드는 왜 생겼을까', '왜 인기가 많았을까' 등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가 질문의 출발이 아니다. 답은 오히려 과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