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경기 여주시 가남읍에 있는 '화요' 제2공장 생산동 3층에 들어서자 밥을 막 지어낸 듯한 고소한 향이 났다. 이곳은 증류식 소주 '화요'를 만드는 출발점인 고두밥과 누룩 제조 공정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쌀을 씻어 불리고 물을 뺀 뒤 스팀으로 찌면 고두밥이 지어지는데, 여기에 곰팡이균을 살포하면 누룩이 만들어진다. 사람 손이 필요한 부분은 곰팡이균을 살포할 때 뿐이다. 다른 모든 공정은 온도·습도 조절, 이송, 공정 기록까지 대부분 자동화 설비와 센서에 맡겨진다.
화요는 2003년 여주 1공장, 탱크 두 대로 출발한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브랜드다. 2023년 말 1공장 부지 안에 연면적 약 7000㎡, 지상 4층 규모의 제2공장을 완공, 작년 1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22년 만에 데이터·인공지능(AI)·전통 옹기 숙성이 공존하는 제조 플랫폼으로 진화한 셈이다. 조희경 화요 대표는 "전통의 레시피를 데이터화하고 이를 AI로 학습시키는 것이 화요의 차별화 전략"이라며 "어느 나라에서 양조장을 열더라도 축적된 데이터 기반으로 화요 고유의 맛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2공장에는 원료 입고부터 병입까지 전 공정을 통합 관리하는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생산관리 시스템)가 깔려 있다. 외부 저장고에 쌀이 반입되는 순간부터 이력 관리가 시작된다. 어느 산지의 쌀이 언제 들어와 어떤 탱크로 이송됐는지, 몇 도에서 얼마 동안 불리고 쪄졌는지 등의 정보가 데이터로 축적된다. 증미(쌀 찌기)·제국(누룩 제조)·발효·증류·숙성 전 과정이 자동화·디지털화된 스마트팩토리다. 아울러 화요는 2021년 주류업계 최초로 스마트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을 도입해 위생·안전 관리도 강화했다.
제조 공정의 골격은 전통 방식에 가깝다. 고두밥과 쌀누룩은 발효 탱크에서 물·효모와 섞여 1차 발효를 거친 뒤, 더 큰 탱크로 옮겨 추가한 고두밥과 함께 2차 발효를 진행한다. 1차 발효는 약 7일, 2차 발효는 약 2주간 이어져 총 3주 정도 지나면 알코올 도수 18~20도 수준의 술덧이 만들어진다.
술덧은 감압증류 방식으로 한 번 더 정제된다. 증류기 내부의 압력을 낮춰 알코올이 낮은 온도에서도 끓도록 하는 것이다. 상압에서 알코올이 80도 안팎에서 끓는 것과 달리, 감압증류 방식을 이용하면 40도 안팎의 온도에서 증류가 진행된다. 박준성 화요 생산본부장은 "낮은 온도에서 끓이기 때문에 술덧 속 고형분이 타면서 나는 탄맛과 잡내를 줄이고, 쌀 누룩에서 오는 향과 질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증류를 통해 얻은 원액은 저장 탱크에서 한 번 더 균질화(블렌딩) 과정을 거친 뒤 옹기 숙성실로 간다. 화요 제2공장 숙성실에는 약 300개의 옹기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며, 1·2공장을 합하면 총 1500개 안팎의 옹기가 있다. 일부 항아리에는 2005년 생산한 원액이 20년째 숙성 중이다. 옹기는 장인이 손으로 빚기 때문에 용량과 두께가 제각각인데, 화요는 주세법상 용기 검정을 거친 뒤 각 옹기에 QR 코드를 부착해 용량과 투입·출고 이력, 증발량을 모두 데이터로 관리한다.
옹기 숙성 기간은 최소 3개월이다. 옹기 표면의 미세한 기공을 통해 공기가 드나들면서 원액의 거친 알코올 향과 맛이 누그러지고, 쌀 특유의 부드러운 향과 질감이 남는다. 같은 원액이라도 숙성 온도·습도, 증발 속도에 따라 향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화요는 숙성실 환경과 항아리별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렇게 숙성을 마친 원액에 물을 섞어 도수를 낮추면 '화요41' '화요25' '화요17' 등 제품군이 완성된다. 오크통에서 별도로 숙성한 원액은 '화요X.프리미엄'으로 선보이고 있다. 여주 제2공장에 별도로 구축된 캔 포장 라인에서는 향후 '화요 19금' 등 저도주 베이스의 캔 하이볼 제품도 생산할 계획이다.
화요는 이번 제2공장 공개와 함께 그룹 체제로의 전환도 공식화했다. 도자기 브랜드 '광주요'와 프리미엄 식문화 플랫폼 '가온소사이어티'를 화요와 묶어 '화요그룹'을 출범했다. 술을 중심으로 그릇·한식·미식 공간을 아우르는 식문화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는 목표다. 조 대표는 "광주요의 헤리티지와 가온소사이어티의 파인다이닝 운영 경험, 화요의 증류주 기술을 하나의 브랜드 축 아래 결집해 '술·그릇·식문화'를 통합적으로 브랜딩하겠다"라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낸다. 화요는 미국·영국·일본·호주·캐나다 등 30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 레스토랑과 파인다이닝 공간에서 정찬 코스와 페어링되는 프리미엄 증류주로 자리 잡고 있다. 조 대표는 "2026년에는 화요그룹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겠다"라며 "지식재산권(IP) 협업, RTD(Ready to Drink) 캔 제품과 저도주 라인업 개발, 글로벌 바·클럽 네트워크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