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에 육박하면서 식품업계 원가 부담이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식품업계는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70%에 달해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합니다. 다만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눈치 보기 기조가 이어지면서 당분간 가격 인상은 어렵다는 게 중론입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명동 한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9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66.9원을 기록했습니다. 2년 전 같은 날 종가인 1306.8원과 비교하면 12.3% 오른 수치입니다. 식품업체들은 경기 침체로 인한 내수 소비 부진에 고전해 왔습니다. 여기에 고환율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제품 가격 인상에 대한 필요성이 조용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팜유와 코코아 등 핵심 원재료 가격 상승 여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식품업계는 원자재 외에도 포장재, 첨가물, 수입 가공식품 등 다양한 부자재를 외화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원가 상승 압박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지난 1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공개한 '식품산업 원료 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식품 제조 업체의 국산 원료(밀·대두·옥수수·원당 등) 사용 비율은 31.9%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제외한 약 70%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오리온(271560)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원재료 매입액은 1조6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9% 늘었습니다. 오뚜기(007310)농심(004370)도 각각 10.1%, 4.0% 증가했습니다.

다만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물가 관리 기조 속에서 당분간 가격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실제로 최근 정부는 식품사들의 담합, 슈링크플레이션(가격을 유지한 채 용량을 줄임)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습니다. 체감 물가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원가 명목의 제품 가격 인상이나 내용량 축소 여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설탕 담합 혐의로 CJ제일제당(097950)·삼양사·대한제당(001790) 등을 상대로 제재 절차에 착수하기도 했습니다. 가격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은 정치적으로 악재입니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전경. /뉴스1

식품업계는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는 정부 눈치를 보면서 당장 가격 인상보다 공급처 다변화, 수출 확대, 재고 확보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한 원가 방어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다만 지방선거까지 고환율이 이어질 경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정부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양을 줄여야 하는데 정부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도 "달러화뿐만 아니라 유로화 환율도 급등하면서 고전하고 있다. 수출을 확대하거나 상대적으로 환율 부담이 적은 새로운 해외 구매처를 물색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가격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정치권 영향이 커 눈치를 보는 기간이 지방선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식품 가격을 빡빡하게 관리하고 있다. 업계의 '눈치 싸움'이 이어질 전망"이라며 "다만 식품업계는 제품 가격을 한 번 올리면 다시 내리는 경우가 없다. 쉽사리 가격을 올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