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와인 시장에서 화이트 와인의 인기 상승세가 뚜렷하다. 시장조사기관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TBRC)에 따르면 전 세계 화이트 와인 시장 규모는 지난해 424억달러(약 62조5000억원)로 집계됐다. 2029년에는 559억달러(약 82조5000억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특히 '가볍고 청량한 화이트 와인'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프랑스 부르고뉴 최북단 지역 샤블리(Chablis)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샤블리에선 100% 샤르도네로 와인을 만든다. 부르고뉴 와인 협회가 발표한 '2024년 한국 내 부르고뉴 와인 시장 보고서'는 "젊은 세대가 샤르도네 기반 화이트 와인을 더 선호하고 있으며, 샤블리 산은 부르고뉴의 한국 수출 화이트 와인 물량 중 32%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기후 변화로 유럽 전역의 화이트 와인이 점차 더 농익고 묵직해지는 흐름 속에서도 샤블리는 여전히 차갑게 살아 있는 산도를 유지하고 있다. 저명한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은 샤블리를 두고 "강인하고 산도가 높으며, 강철 같은 질감을 지닌다"라며 "샤블리 애호가들은 순수하고 절제된 풍미, 그리고 입안을 스치는 날카로운 느낌을 소중히 여긴다"라고 밝혔다.
샤블리의 개성은 오랜 시간 축적된 토양에서 비롯된다. 현지 토양은 1억5000만년 전 고대 바다의 퇴적층이 굳어 형성된 키메리지안(Kimmeridgian) 석회암으로, 조개 등 어패류 화석이 그대로 박혀 있다. 여기에는 칼슘·마그네슘·해양 미네랄 성분이 높다. 이 암석층에서 자란 샤르도네는 부싯돌 향, 짠 미네랄, 직선적으로 뻗는 산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오크 향이나 농익은 과일의 화려함을 걷어낸, 절제미가 돋보이는 화이트 와인이다.
아울러 샤블리는 부르고뉴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어 서늘한 기후가 특징이다. 세렌 강을 따라 형성된 계곡 지형은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강해 포도가 천천히 익는다. 이 때문에 기후 변화 속에서도 비교적 낮은 알코올 도수와 선명한 산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생산자 중 하나인 가르니에르 앤 피스(Domaine Garnier & Fils)는 리니 르 샤텔(Ligny-le-Châtel)에 자리한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피스(Fils)'는 프랑스어로 '아들들'을 의미하며, 현재는 형제인 자비에(Xavier)와 마티유(Mathieu)가 운영하고 있다.
가르니에르 가문은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포도밭을 소유해 왔는데 자체 병입은 1996년부터 시작했다. 리니 르 샤텔 외에도 쁘띠 샤블리, 말리니, 빌리, 리뇨렐 등에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포도밭은 토양·경사·바람 흐름 등 구획별 조건을 세밀하게 나눠 관리한다. 여러 그랑 크뤼 지역의 신뢰할 수 있는 포도 재배자들과도 장기 계약을 맺고 있다.
가르니에르 앤 피스 샤블리는 15~30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샤르도네로 만든다. 포도가 충분한 향과 구조를 갖출 때까지 비교적 늦게 수확한다. 재배부터 병입까지 전 과정에서 사람의 개입을 최대한 줄인다. 대량 생산보다는 테루아의 선명함을 우선하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포도는 일반적인 압착보다 낮은 압력으로, 6시간 이상 천천히 눌러 맑은 주스만 추출한다. 약 120일 동안 자연 효모로 발효하며 보존제 역할을 하는 이산화황(SO₂)도 필요한 최소한만 사용한다.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11개월 숙성하며, 간단한 여과만 거칠 뿐 불순물을 가라앉히는 정제나 저온 안정화 과정은 생략한다. 사람 손으로 지나치게 다듬지 않고, 토양의 특성과 포도의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다.
완성된 와인은 밝고 선명한 황금빛을 띠며, 레몬·자몽·카모마일의 산뜻한 아로마와 브리오슈의 고소함이 함께 드러난다. 입안에서는 생동감 있는 산미와 정교한 미네랄 질감이 균형을 이루며, 생선·해산물 요리, 치즈, 가벼운 샐러드와 특히 잘 어울린다. 이 와인은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구대륙 화이트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비노에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