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미국과 유럽연합(EU)산 멸균우유가 무관세로 수입된다. 국내 유업계는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미 수입 멸균우유는 국내산 우유 대비 가격이 절반 수준이다. 관세까지 철폐되면 가격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유업계는 '가격 경쟁' 대신 프리미엄·기능성 제품 라인업 강화, 사업 다각화로 생존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2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외국산 멸균우유 수입량은 2018년 4291톤(t)에서 지난해 4만8699t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멸균우유는 고온 살균 과정에서 모든 미생물을 제거해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한 달 이상, 길게는 1년 이상 보관 가능하다. '저장형 소비' 트렌드가 맞물리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요가 크게 늘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도 멸균우유는 재고 관리가 용이해 채널 확대가 빠르게 진행됐다. 과거에는 대형마트·온라인 중심이었지만, 지난해부터는 편의점에서도 멸균우유 판매가 본격화됐다. 반면 국산 살균우유는 저온 살균을 거쳐 냉장 보관이 필수다. 개봉 전 기준 유통기한은 11~14일 정도로 짧지만, 영양소 손실이 적고 신선한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가격이다. 폴란드산 멸균우유 1리터 제품은 국내 이커머스에서 리터당 1700원 수준으로 판매된다. 국산 우유 가격의 절반 안팎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소비자는 물론 커피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들까지 수입 멸균우유 사용량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라며 "가격 경쟁력은 물론 유통기한 긴 우유를 사용하면 재고 관리에 대한 부담이 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격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한 국내 유업체들은 제품 고급화와 시장 확장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프리미엄 제품과 기능성 음료, 외식·식물성 라인업 등으로 전략을 세분화하는 것이다.
서울우유는 2030년까지 모든 우유 제품을 A2 원유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다. 위장 부담이 적다고 알려진 A2 베타카제인 원유를 앞세워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저지우유 아이스크림 등 프리미엄 디저트 제품군을 확대하고, 편의점과 협업한 크림롤·크림도넛 등으로 간편식·디저트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테이크핏' 단백질 음료 시리즈, 무가당 '초코에몽 미니' 등 기능성·저당 중심의 라인업으로 제품 라인을 재정비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매일유업은 단백질 브랜드 '셀렉스', 귀리음료 '어메이징 오트', 식물성 음료 '아몬드 브리즈' 등 비(非)우유 기반 제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울러 커피 프렌차이즈 폴바셋을 운영하는 엠즈씨드로 엠즈푸드·크리스탈제이드 등 외식 계열사를 통합 흡수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유 무관세 시대는 국내 낙농업과 유가공 산업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라며 "유업계는 단순 우유 판매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카테고리까지 영역을 넓히며 새 시장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내년은 유업계의 전략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