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이 36년만에 우지(소기름)를 재도입한 신제품 '삼양1963'으로 내수 시장 반등을 노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불닭볶음면'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삼양식품은 그 뒤를 이을 '제2의 히트작'을 찾아야 하는 상황인데, 오너 3세인 전병우 전무(31)가 경영 전면에 등장하면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삼양라운드스퀘어는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2026년 정기 임원인사를 17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김정수 부회장의 장남인 전병우 운영최고책임자(COO)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입사 6년 만의 성과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불닭 브랜드 글로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해외사업 확장에도 기여했다는 성과를 인정받았다"라며 "중국 자싱공장 설립을 주도해 해외사업의 성장동력을 마련하면서 핵심 사업 경쟁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선 일부 성과를 인정하더라도 승진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 전무는 입사 이듬해인 2020년 6월 경영관리부문 이사로 승진하며 식품 업계 오너 3세 최연소 임원 기록을 세웠다. 이어 2023년 10월에는 신사업본부장 겸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 상무로 승진했고, 상무 승진 2년 만에 전무로 한 차례 더 승진했다.
경영 성과가 늘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전 전무가 기획에 참여한 신규 브랜드 '맵탱'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23년 출시 초기 성과는 괜찮았지만 일부 유통 채널에서는 판매량이 두 자릿수 이상 떨어졌다"라며 "입소문이 나야 하는데 출시 2년이 지났지만 소비자 인지도가 높지 않다"라고 말했다.
전 전무는 헬스케어BU(비즈니스 유닛)장을 겸임하고 있는데 2024년 출시한 식물성 식품·스낵 브랜드 '잭앤펄스(현 펄스랩)'의 성적도 지지부진하다. 성과에 따른 보상이라는 것은 포장일 뿐, 실제로 이번 승진은 승계를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전 전무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는 삼양식품이 가진 핵심 문제인 '내수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삼양식품의 올해 상반기 기준 매출의 77%가량이 해외에서 발생했고, 국내 비중은 23% 수준에 그쳤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삼양식품의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은 9.8%로, 농심(55%), 오뚜기(20%)와는 큰 격차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불닭볶음면'은 해외 시장에서 'K-라면' 열풍의 주역이 됐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불닭 이후 후속작이 부재하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큰 인기를 모은데다 메가 브랜드가 불닭볶음면 하나 뿐이기 때문에 후속 히트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최근 삼양식품이 내놓은 신제품 '삼양1963'이 불닭볶음면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1989년 우지 파동 이후 생산 라인에서 사라졌던 우지를 다시 사용한 제품이다. 지난 3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회에는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직접 나서 제품을 설명하기도 했다. '맵탱' 브랜드 출시 때도 별도의 간담회는 열지 않았는데 그만큼 신제품에 힘을 많이 싣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부회장은 간담회에서 "한때 금기처럼 여겼던 우지는 삼양라면의 풍미를 완성하는 진심의 재료였다"며 "창업주이자 시아버님이신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이 평생 품고 있었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격대는 4입 묶음 기준 6150원으로 기존 삼양라면 대비 약 2배 가격이다. '신라면 블랙', '더미식 장인라면' 등 프리미엄 제품을 공략했다. 창업 초기 레시피 정신을 현대적으로 복원하면서 프리미엄 라면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 전무의 가장 큰 과제는 내수 시장에 삼양의 존재감을 새롭게 정의하고, 경영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라며 "'삼양1963′은 제품의 흥행 여부를 넘어, 삼양식품의 브랜드 전략과 전 전무의 경영 역량을 동시에 평가받는 출발점이자 시험대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