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류 대기업 산토리(Suntory)가 내년 4월부터 프리미엄 위스키·수입 소주·와인 등 주요 주류 제품 가격을 최대 20% 인상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에게 선물해 화제가 됐던 일본 프리미엄 위스키 '하쿠슈 25년'도 가격 인상 대상에 포함됐다. 산토리의 가격 인상 발표 이후 퀵턴(Quick-Turn·당일치기 여행자)족은 물론 국내 면세점 유통망에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산토리는 내년 4월 1일 출하분부터 히비키·야마자키·하쿠슈 등 프리미엄 위스키 3개 브랜드 15종 가격을 최대 15% 인상한다. '히비키 재패니즈 하모니(700㎖)'는 8250엔(한화 약 7만7000원)에서 8800엔(약 8만2800원)으로 약 6% 오르고, 프리미엄 라인인 '히비키 30년'은 39만6000엔(약 373만원)에서 45만6000엔(약 429만원)으로 15%가량 인상된다.
한국산 소주 '쿄게츠 그린(경월(鏡月) Green)'과 서울막걸리를 포함한 산토리 수입 제품 40여 종과 와인 132종 가격도 오를 예정이다. 인상률은 품목별로 2~20% 수준이다.
산토리 측은 이번 가격 인상 결정에 대해 "포장재를 비롯한 원재료비 및 매입가격 등 비용 상승분을 기업이 전부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며 "고품질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불가피한 가격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024년 4월 산토리는 하쿠슈·야마자키 등 주요 브랜드 가격을 올렸다. 해외에서 일본산 위스키 인기가 높아진 데다 긴 시간 숙성해야 하는 위스키 양조 특성상 품귀 현상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 일본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일본산 위스키 수출액은 2023년 3월 기준 501억엔으로 10년새 12배 이상 늘었다.
한국은 일본산 위스키 주요 소비 시장 중 하나다. MZ(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세대를 중심으로 '하이볼'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본산 위스키 수요가 급증했고, 위스키 구매만을 위해 일본을 단기 방문하는 '퀵턴(Quick-Turn)족'도 늘었다. 면세 혜택을 활용하면 항공·선박 비용을 포함해도 국내 구매가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 4월 이후에는 퀵턴족의 움직임이 한동안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4월 이후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 빠르면 현지 도매상들이 당문간 물량을 시장에 덜 내놓을 수 있다"며 "산토리 가격 인상 이후 니카 등 다른 위스키 브랜드의 가격 인상 가능성도 있어 퀵턴족도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면세업계 역시 일본산 위스키 등 주류 가격 조정 압력을 받을 전망이다. 면세점 판매가는 제조사·수입사의 원가, 환율, 유통 재고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데, 일본 본사의 출고가 인상은 면세가 조정 가능성을 높이는 배경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히비키·야마자키·하쿠슈 등 주력 라인업의 현지 출고가가 오르면 국내에서도 일정 부분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희소성이 있는 브랜드라 가격 민감도가 높진 않지만 가격 경쟁력 차원에서 면세점 주류 카테고리를 일부 조정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위스키뿐 아니라 소주·와인까지 인상 대상인 만큼, 면세 주류 전반의 가격대가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명욱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는 "위스키는 희소성과 소장 가치가 큰 제품이다. 가격 인상 시점 직전까지 희소 가치를 염두에 둔 선구매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산토리의 20% 안팎의 가격 인상 여파에 따라 니카 등 다른 주요 브랜드가 사업 계획을 조정하면서 가격 인상 흐름에 동참할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