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의 가빌란 산맥(Gabilan Mountains) 자락에는 거대한 석회가마가 있었다. 이 지역의 풍부한 석회석을 24시간 동안 고열로 구워 시멘트로 만들던 시설이다. 사람들은 이를 스페인어로 석회가마를 뜻하는 '칼레라(Calera)'라고 불렀다. 이 가마는 산업화 시대, 당시 캘리포니아 지역 개발의 흔적인 셈이다. 세월이 흐르며 가마는 가동을 멈췄지만, 와인 메이커 조시 젠슨(Josh Jensen)은 이 지역에 주목했다.
영국 옥스퍼드에서 사회인류학을 전공하던 조시 젠슨은 유럽을 여행하면서 와인의 세계에 매료됐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omanée-Conti), 도멘 뒤작(Dujac), 론 밸리의 샤토 그리예(Château Grillet) 등에서 수확과 양조를 도왔다. 그는 프랑스 부르고뉴가 수세기 동안 석회암 토양에서 피노누아를 재배해온 것에 착안, 미국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 전역을 2년 동안 샅샅이 뒤졌다고 한다.
1974년 젠슨은 가빌란 산맥의 남단, 석회암이 매장된 할란 산(Mount Harlan) 부지를 매입했다. 해발 2200피트(약 670 m)에 달하는 고지대였는데, 포도 재배지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석회암이 매장된 토양의 잠재력을 믿었다. 이듬해 그는 석회가마에서 영감을 받아 와이너리의 이름을 '칼레라'로 정하고, 옛 가마의 이미지를 라벨에 새겨 넣었다.
1975년에는 인근 포도원에서 구입한 진판델(Zinfandel) 포도로 첫 1000상자를 생산하며 와이너리의 역사를 열었다. 동시에 세 구획의 포도밭에 각각 셀렉(Selleck), 리드(Reed), 젠슨(Jensen)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24에이커 규모로 피노누아를 심었다. 이후 밀스(Mills), 드 빌리에르(de Villiers), 라이언(Ryan) 등의 단일 포도밭과 더불어 샤르도네를 재배하는 포도밭까지 차례로 추가하며 오늘날의 칼레라 포도원 체계가 완성됐다.
칼레라가 자리한 센트럴 코스트(Central Coast)는 캘리포니아에서도 가장 피노누아를 재배하기 적합한 기후를 지닌 지역이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냉풍이 산맥을 넘어 할란 산 포도밭을 스쳐 지난다. 일교차가 크고 고도가 높아 연평균 기온은 인근보다 5~6 ℃ 낮다. 포도는 천천히 익어 풍미를 응축시키며, 산도와 향을 균형 있게 유지한다. 이 지역의 석회암은 약 1억년 전 바다의 퇴적층이 융기하며 형성된 것으로, 토양 속 미네랄이 와인에 구조감을 준다.
젠슨은 부르고뉴에서 배운 중력식 양조(gravity flow) 시스템을 캘리포니아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칼레라의 양조시설은 7개 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포도와 와인이 층층이 아래로 흘러내리도록 설계돼 있다. 펌프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알갱이와 향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식이다. 그는 인공 효모나 과도한 개입을 배제하고, 테루아의 표현에 집중했다.
와인 평론 매체인 '와인 스펙테이터'는 그를 "부르고뉴의 비전을 캘리포니아에서 실현한 피노누아의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 역시 "칼레라는 캘리포니아의 로마네 콩티"라며 그의 업적을 찬사했다.
칼레라의 와인은 크게 두 가지 라인으로 나뉜다. 하나는 마운틴 할란 싱글 빈야드 시리즈(Mt. Harlan Single Vineyard Series)다. 각 밭의 이름을 병에 표기한 프리미엄 라인으로, 토양은 유사하지만 경사와 노출 방향이 달라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젠슨 밭은 사면이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고, 리드 밭은 북향이라 익는 시기가 늦다. 밭마다 다른 개성과 복합미를 지닌 피노누아가 태어난다.
다른 하나는 센트럴 코스트 시리즈(Central Coast Series)다. 몬터레이와 산타 바바라 등 센트럴 코스트 일대의 포도를 선별해 블렌딩한 라인으로, 칼레라의 철학을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전한다. 이 와인은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신대륙 레드 와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10개월간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하며 이때 새 오크는 10%가량 사용한다. 핑크 로즈·들장미·레드 커런트·제비꽃·넛맥의 섬세한 향이 피어나고, 입 안에서는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진다. 검은 체리·달콤한 향신료·은은한 감초가 이어진다. 탄탄한 구조감과 긴 여운은 석회암 테루아의 본질을 그대로 전한다.
칼레라 센트럴코스트 피노누아는 부드러운 산도와 세련된 질감 덕분에 음식과의 궁합이 뛰어나다. 꼬꼬뱅(coq au vin), 까르보나라 페투치니, 허브를 곁들인 구운 연어, 버섯구이, 마늘과 허브를 입힌 돼지안심 등 풍미 있는 요리와 잘 어울린다. 국내 수입사는 나라셀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