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화이트 와인 품종은 단연 소비뇽 블랑이다. 이 품종은 뉴질랜드 전체 포도밭의 약 65%를 차지한다. 신선한 열대 과일 향과 강렬한 산미로 세계 시장에서 사랑받는다. 그런데 세계적인 와인 평론 매체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이 작년 말 소비뇽 블랑이 아닌 한 뉴질랜드 리슬링(Riesling)에 대해 이례적인 칭찬을 남겼다. 이 매체는 "이 와인은 독일 자르(Saar) 지역의 스타일을 보여준다"라며 "강렬한 미네랄리티와 라임향, 생생한 에너지와 긴 여운이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점수는 100점 만점에 95점을 줬다.
리슬링의 고향은 독일이다. 라인강 유역에서 기원한 품종으로, 현재까지도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리슬링 산지로 평가받는다. 뉴질랜드 와인협회에 따르면 리슬링이 뉴질랜드에 대량으로 심어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최근 몇 년 동안 심는 화이트 와인 품종 중에선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피노 그리에 이어 4번째로 재배되는 소수 품종이다. 이를 고려하면 제임스 서클링의 평가는 이례적이다. 제임스 서클링이 언급한 와인은 뉴질랜드 넬슨(Nelson)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신생 와이너리 '쉴드(SHEiLD)'의 리슬링이다.
브랜드명 쉴드는 설립자 트루디 쉴드(Trudy Sheild)의 성에서 따왔다. 그는 뉴질랜드 북섬 호크스베이 출신으로, 본래 생물학과 미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였다. 의료 미생물학 분야에서 일하던 그는 2001년 뉴질랜드 링컨 대학교(Lincoln University)에서 양조학을 공부했다. 이후 넬슨의 와이메아 에스테이츠(Waimea Estates), 미들 어스(Middle Earth) 등에서 20년 가량 양조가로 경력을 쌓으며 이 지역의 기후와 포도밭을 깊이 탐구했다. 2021년 마케팅을 담당하는 파트너 블레어 깁스(Blair Gibbs)와 함께 미들 어스를 인수, 리브랜딩하며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이너리를 세웠다.
뉴질랜드 리슬링의 95%는 남섬에서 재배된다. 쉴드 와이너리가 있는 넬슨은 뉴질랜드 남섬 북단에 있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낮에는 따뜻하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밤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가 머물러 포도에 선명한 산도를 남긴다. 바람이 꾸준히 불어 포도밭의 병해를 줄여주며 길고 건조한 가을은 리슬링을 재배하기에 완벽한 환경으로 평가받는다. 빙하 퇴적층과 하천 퇴적물이 섞인 자갈·점토·석회질 토양은 배수가 좋고 미네랄이 풍부해 리슬링의 미네랄리티와 깨끗한 구조를 돋보이게 한다.
뉴질랜드 와인협회는 "넬슨에서 생산되는 리슬링은 잘 익은 핵과류, 향신료, 그리고 감귤류 꽃 향이 어우러진 풍부한 과일 향을 자랑한다"라며 "넬슨의 일조량, 온화한 기후, 높은 일교차 덕분에 강렬한 향과 깔끔하고 구조감 있는 풍미를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쉴드 리슬링은 과학자 출신인 트루디 쉴드의 정밀한 관찰력과 균형 감각이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도는 수확할 때부터 섬세하게 다뤄지는데, 4월 초 기온이 가장 낮은 이른 아침에 수확한다. 와이너리로 운반 중 과즙과 껍질이 자연스럽게 접촉하게 해 풍미를 깊게 한다. 와이너리에 도착한 포도는 줄기를 제거하고 가볍게 분쇄해 압착하며, 압착 과정은 세심하게 모니터링해 찌꺼기를 분리한다.
과즙은 높은 투명도를 얻기 위해 장기간 저온 침용을 거치고, 발효 단계에서는 온도를 서서히 높여 독일 리슬링에서 분리한 효모 균주를 넣는다. 발효 후 와인은 미세 침전물 위에서 약 4개월간 숙성해 질감과 복합미를 준다.
완성된 와인은 투명한 과일을 연상시키는 연한 노란빛을 띠며, 시트러스 꽃과 라임 향, 흰꿀의 부드러운 뉘앙스가 조화를 이룬다. 미세한 잔당과 리슬링 특유의 산도가 입안에서 과즙이 터지는 듯한 생동감을 주고 미네랄 여운이 길게 남는다.
쉴드 와이너리는 리슬링을 아침 11시나 점심 식사 시간에 즐기기 좋은 와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기분 전환이 되는 식전주로도 좋다. 윤기 있는 돼지고기 요리나 매콤달콤한 아시아풍 요리와의 조화가 뛰어나다.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화이트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니혼슈코리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