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 메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상 만찬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최고 수준의 의전 행사로 정치적 메시지가 오가는 외교 무대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만찬 메뉴에 대한 여러 예측이 잇따르고 있다.

대통령실이 29일 공개한 경주 한미 정상회담 오찬 메뉴. (왼쪽부터) 우리 해산물에 사우전드아일랜드 드레싱을 한 전채요리, 경주 햅쌀과 미국산 갈비로 한 찜 요리, 'PEACE!'를 레터링한 감귤 디저트. /대통령실 제공

29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의 만찬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로 이름을 알린 에드워드 리가 총괄 셰프를 맡아 롯데호텔서울과 함께 상을 차린다. 한국 전통 음식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한 퓨전 요리가 선 뵐 전망이다. 에드워드 리는 최근 외교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한국 음식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또 혁신적으로 보여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날 열린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의 만찬 메뉴와 이날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오찬에 올라온 메뉴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CEO 서밋 만찬에서는 경주 한우, 동해 전복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한국 전통 음식과 더불어 할랄·비건 음식까지 다양한 문화의 식음료가 제공됐다. 디저트로는 경주 황남빵과 첨성대 초콜릿 등 경주를 상징하는 간식들이 준비됐다.

지난 2023년 한미 정상 국빈만찬 메뉴를 준비한 에드워드 리 셰프가 메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미 정상회담 오찬은 트럼프 대통령의 고향인 뉴욕에서의 성공스토리를 상징하는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이 가미된 전채요리로 시작됐다. 사우전드 아일랜드는 미국 뉴욕주 북부의 지역 명칭에서 유래한 소스다. 트럼프 대통령이 편히 느낄 수 있는 맛으로 환대하겠다는 외교적 제스처인 셈이다.

이외에 경주햅쌀로 지은 밥, 전국 각지의 제철 식재료, 지역 특산물이 한식 3코스로 올랐다. 한미 동맹의 전성기와 평화를 기원하는 황금빛 디저트로 오찬은 마무리됐다. 업계 관계자는 "황금빛은 번영·화합·평화의 상징으로 외교 식탁에서 금빛 또는 백색의 디저트는 성공적인 관계, 밝은 미래를 상징한다"라고 해석했다.

경주는 산과 바다를 모두 품은 도시다. 이 때문에 정상회의 만찬에서도 경주 특산물이 식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지역 브랜드인 '천년한우'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천년한우는 2006년 경주축협이 개발한 브랜드로, 약 2000개 농가가 4만여 마리를 관리한다. 2022년 대형 유통업체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도 11개 한우 브랜드 중 1위를 차지했다. 부드러운 육질과 진한 감칠맛이 특징이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에서 메인으로 소고기 너비아니가 등장했던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한우를 활용한 갈비 또는 구이류 요리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최고급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는 실제로 여러 국가가 국빈 만찬 단골 메뉴로 올린다.

동해안에서 잡히는 가자미·전복 등 해산물도 후보군에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전복은 장수와 번영의 상징"이라며 "정상 만찬에 전복이 등장한다면 지속 가능한 번영과 평화를 함께 누리자는 외교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주로 거론되는 경주교동법주. /교동법주 제공

에드워드 리 셰프의 성향 상 APEC 정상 만찬에서도 한국의 장(醬)을 활용한 요리를 선보일 가능성도 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한국 음식의 핵심은 장에서 비롯된다", "된장, 간장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재료"라고 말해왔다. 2023년 백악관 한미 정상 만찬 당시에도 메인 갈비찜 소스에 고추장과 간장, 잣 페이스트를 조합한 글레이즈(glaze) 를 사용해 미국식 조리법과 한국의 맛을 결합한 바 있다. 이번 만찬에서도 경주 지역의 식재료에 장을 곁들여 풍미를 살리거나, 잣·된장·발효 간장으로 만든 소스를 메인 요리에 접목하는 방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찬주의 경우, 지역 명주인 '교동법주'와 '안동소주'가 거론된다. 교동법주는 경주시 교동 일대에서 전승된 전통 청주로,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삼양주(三釀酒) 제조법을 유지하고 있다. 은은한 단맛과 맑은 빛으로 유명하며, 인공 첨가물을 쓰지 않아 '생주'로 불린다. 안동소주는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증류식 소주로, 조선시대 왕실 진상품으로 전해진다. 40도 내외의 높은 도수지만 곡물의 단맛과 누룩 향이 살아 있다.

일각에서는 고량주(백주)나 허베이산 와인 등 중국 술이 식전주로 일부 제공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진핑 주석이 차기 APEC 의장직을 이어받는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이 식탁 위에 오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업계 관계자는 "와인은 국적을 넘어선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산 와인을 건배주로 활용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