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재출시된 삼양식품(003230) '삼양라면 1963'이 단순한 복고 상품을 넘어 '동물성 지방의 재평가' 흐름과 맞물려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1989년 '공업용 기름 파동(속칭 우지 파동)' 이후 '우지(牛脂·쇠기름)'는 인체에 무해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금기어처럼 취급됐습니다.
삼양식품은 이번 복귀작에서 오히려 '우지의 깊은 풍미'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니라 '동물성 지방의 명예 회복'을 향한 선언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26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다음달 3일 신제품 발표 행사를 열고 소기름을 사용한 프리미엄급 라면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제품명은 국내 최초로 라면을 출시한 해인 1963년에서 따온 '삼양라면 1963'으로 전해집니다.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식용 동물성 지방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3년 51억1000만달러(약 7조3000억원)에서 2032년 75억9200만달러(약 10조9142억원)로 커질 전망입니다. 한때 '몸에 해로운 지방'으로 밀려났던 라드(돼지기름)·우지·버터 등이 이제는 '건강한 전통 지방'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셈이죠.
이런 흐름의 불씨는 미국 'MAHA(Make America Healthy Again·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운동이 지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건복지부 수장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장관이 "씨앗 기름은 독성 물질이며, 동물성 지방을 복원해야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자 논란에 불이 붙었습니다. 카놀라유, 포도씨유 등 '씨앗 기름 8종'을 퇴출하자는 캠페인이 번지자 버터·라드·우지 같은 전통 지방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지(43%)나 라드(42%) 등 동물성 지방의 포화지방산 함량은 라면에 주로 쓰이는 팜유(50%)보다 낮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한국에도 상륙했습니다. 저탄고지(저탄수·고지방) 다이어트 유행 이후 삼겹살·기버터·라드유 같은 고지방 식단이 일종의 '건강식'으로 자리 잡았고, 식품업계는 아예 동물성 지방을 '프리미엄 식재료'로 상품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식용유 제조사 트루비아는 최근 국산 돼지 신장지방(리프 라드)과 한우 우지를 정제한 프리미엄 식용유 '리얼초이스 라드'와 '라텔로(라드+탤로)'를 내놨습니다. 이 브랜드의 철학은 '씨앗 기름 중심의 현대 식단이 남긴 문제를 넘어, 우리 몸에 맞는 진짜 기름을 되찾는다' 입니다.
편의점 업계도 가세했습니다. GS25는 이달 서울우유와 협업해 100% 동물성 생크림으로 만든 '서울우유 소금크림빵'을 출시했습니다. 팜유(야자유) 대신 진짜 우유에서 추출한 생크림을 사용했고, 독일산 버터와 안데스 소금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죠. 이 제품은 '편의점 최초 동물성 생크림빵'이라는 타이틀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동물성 지방은 '맛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식물성 기름보다 요리의 풍미를 살려준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유명 돈가스집 '연돈'의 김응서 사장은 한 방송에서 "식용유 대신 매일 돼지 지방을 녹여 라드유를 쓴다"며 "이게 바로 돈가스의 바삭함과 풍미를 만드는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삼양식품 역시 '우지라면의 고소한 맛'을 앞세워 풍미 복원에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식품업계 일각에서는 '우지라면 1963' 재출시를 '동물성 지방 르네상스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동안 식물성 기름이 더 건강하다는 프레임 아래 밀려났던 동물성 지방이, 이제는 과학과 시장의 힘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죠. 식품업계 관계자는 "동물성 지방은 무조건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어떻게 정제하고 어떤 원료를 쓰느냐에 따라 '건강한 기름'이 될 수 있다"며 "이제는 지방의 품질이 식품의 품격을 가르는 시대"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