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내수만 주력으로 하는 식품사들의 실적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오르면서(원화 가치 하락) 수익 대부분이 상쇄된 탓이다.
식품사들의 3분기 실적 추정치를 살펴보니 해외 시장에 진출한 식품사들만 실적 개선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됐다. 원자재 가격 하락에 환율 효과까지 누리는 덕이다.
22일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증권사 2곳 이상이 분석한 식품 상장사 중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가 전년 대비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곳은 오리온(271560)과 삼양식품(003230), 농심(004370)뿐이었다.
우선 삼양식품의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가 가장 많이 늘어날 것으로 집계됐다.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추정한 삼양식품 3분기 영업이익 평균치는 1362억원으로, 이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56% 증가한 수치다. 농심의 3분기 영업이익 추정 평균치는 445억원으로, 작년 3분기 대비 18%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기간 오리온은 4% 증가한 142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추정됐다.
이밖에 대부분 식품사의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전년 대비 떨어졌다. 전년 영업이익 대비 하락률을 기준으로 가장 많이 뒷걸음질 칠 곳으로 집계된 곳은 빙그레(005180)다. 전년 3분기 영업이익 대비 올해 추정치가 20% 넘게 떨어졌다.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1031억원 수준일 것으로 집계됐다. 그 뒤를 CJ제일제당, 오뚜기가 따랐다. CJ제일제당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전년 대비 6.8%, 오뚜기는 5.0% 떨어질 것으로 집계됐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초부터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자 식품주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해 왔다. 이미 지난 해 원자재 가격이 지나치게 올랐다는 이유로 소비자 가격을 줄이어 인상했기 때문이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올해 1월 톤(t)당 평균 1만1159.57달러를 찍은 코코아는 이달 600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서아프리카의 가뭄이 해소돼 공급난이 완화된 데 따른 것이다. 같은 기간 국제 버터 가격도 파운드당 261센트에서 179센트로 떨어졌고, 아이스크림의 원료인 탈지분유도 톤당 2573유로에서 2175.67유로로 내렸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움직인 원·달러 환율이 악재로 작용했다. 미국과 중국 간 관세전쟁 여파로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 문제였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원자재 구매에 더 큰 비용이 든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1400원대를 뚫고 올라갔던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부침을 겪다 최근 1430원대까지 다시 올라갔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한동안 이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떨어진 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이익률을 높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 와중에 실적을 가른 요인은 해외 시장 침투율이다. 오리온은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베트남 등으로 제과를 생산·판매하고 있고 삼양식품과 농심은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라면을 수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라면 수출은 고관세 여파도 피해 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올해 들어 지난 9월 29일까지 농수산식품 수출이 100억달러(약 14조3000억원)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라면의 수출 증가세는 전년 동기 대비 24.7%로 가장 높았다.
증권가에선 당분간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얼마나 보이는지 여부가 식품기업의 성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아직은 비싸게 사 온 원료로 만든 제품을 쌓아놓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길게는 내년 1분기까지 실적 추이를 더 살펴봐야 한다"면서도 "다만 원자재 가격 하락이 원화 가치 하락에 가린 상황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식품주에 투자할 땐 반드시 해외 시장 확장 여부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