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 햅쌀이 나오면 쌀값이 안정될 것이란 정부와 시장의 전망이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배추와 사과 등 청과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때아닌 가을장마 탓이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3사(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는 최근 쌀값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햅쌀 생산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급등했던 쌀 가격 진정세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쌀로 술을 빚는 양조장의 걱정도 크다. 한 양조장 관계자는 "지역농협에서 쌀이 부족하다는 공지가 계속 나오고 있어 햅쌀 출하만 기다리고 있다. 수확 작업이 비 탓에 쉽지 않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햅쌀 출하 시기가 늦어진 것은 가을장마 탓이다. 추석 연휴 전후 비가 계속 내리면서 수확이 미뤄졌다. 비가 많이 내리면 추수 기계에 이삭이 엉겨 붙어 정상적인 작업이 불가능하다. 벼가 옆으로 눕는 도복 현상도 발생한다.
대전과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10월 들어 강수일수가 13일에 이르고 누적 강수량은 평년 기준 2배 수준에 달했다. 강원도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16일 기준 기상청 기상자료 개방 포털에 따르면 강릉에는 10월 들어 14일간 비가 계속 내렸다. 이에 따라 삼척 지역 벼 재배면적(538ha) 중 61%가 수확에 아직 나서지 못했다. 이 중 도복 피해를 본 곳은 23.6ha(4%)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강릉에서 벼를 추수하지 못한 곳도 전체 재배 면적의 30%에 달한다.
한 지역농협 관계자는 "논에 물을 빼고 벼를 어느 정도 말려야 추수를 할 수 있는데, 비가 계속 내려 추수에 나설 충분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쌀 소매가격은 지난 15일 기준 20㎏에 6만7351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5만2980원)에 비해 27% 상승한 수준이다.
쌀만 문제인 상황은 아니다. 가을장마로 햇볕이 충분치 않아 사과 농사를 주로 짓는 과수원의 고민도 깊다. 당도가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색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어서다. 당도가 높고 빨간 사과가 좋은 값을 받는데 비가 계속되면 등급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낙과와 열과(열매터짐) 현상도 속속 보고 되고 있다.
배추가격도 오르고 있다. aT에 따르면, 배추 1포기당 가격은 6641원으로 3개월 전(4443원)에 비해 44.4% 올랐다. 비가 계속 오면서 일부 배추는 배춧속이 썩는 현상이 나오고 있다. 대표 배추 산지인 강원 지역 가을 강수량은 예년 대비 1.8배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상대습도는 82%로 1973년 집계 이래 가장 높았다.
대형마트 3사는 가을장마에 따른 신선식품 가격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가을비가 길어지면서 피해 작물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있다"며 "산지 가격과 품질 등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취합하고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한 대형마트 신선식품 MD는 "지난해에는 배추 수급에만 신경을 쓰면 됐는데 올해는 이상 기후로 전체 신선식품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며 "전반적인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