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호주 와인 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전국적으로 포도 재배 면적이 빠르게 늘었지만, 소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당시 호주 소비자들은 와인보다 맥주와 포트·셰리를 더 즐겼다.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와이너리들은 늘어나는 재고를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다수의 와이너리들은 포도 공급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거나 매입을 취소하기 시작했다. 농가 입장에서는 한 해 농사의 결실이 그대로 버려지는 상황이었다. 이는 생계가 걸린 포도 재배자들에게 치명적인 위기였다.
바로사 밸리에 있던 살트램 와이너리 역시 같은 상황에 직면했고 비용 부담을 이유로 농가와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당시 수석 와인메이커였던 피터 르만은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1979년 스스로 와이너리를 세워, 포도를 매입하기로 농가와 맺었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대형 와이너리를 떠나 위험을 무릅쓰고 회사를 세운 셈이다. 그를 '바로사의 수호자(Baron of Barossa)'로 부르는 이유다. 그의 선택이 없었다면 현재의 바로사의 와인 산업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 때문에 그는 오늘날 호주에서 가장 존경받는 와인 생산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현재 피터 르만 와이너리에서 사용하는 포도의 98%는 지역 생산자들의 손에서 나온다. 185명 가량의 포도 재배자들이 900여개가 넘는 포도원에서 수확한 양질의 포도를 공급한다. 덕분에 와이너리는 다양한 품종과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저지대 바로사 밸리에서부터 고도가 높은 에덴 밸리까지, 바로사 전역에 걸쳐 최고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공급받는다. 나머지 2%는 와이너리 자체 포도밭에서 수확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와인 평론가인 잰시스 로빈슨은 "바로사 밸리는 호주 최고의 와인 산지로 인정받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바로사는 해발 400m에 위치한 청정 지역으로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선선한 기후 덕분에 포도가 잘 익으면서도 산도가 유지된다. 포도나무의 흑사병이라 불리는 필록세라에 감염된 적이 없다.
19세기부터 이어진 오래된 포도나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일부 밭에서는 수령 100년을 훌쩍 넘긴 포도나무에서도 포도를 수확한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귀한 사례로 꼽힌다.
이곳의 토양은 복잡한 암석과 적갈색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과일의 강렬함과 깊이를 더한다. 특히 쉬라즈는 바로사 밸리의 테루아를 보여주는 대표 품종으로 꼽힌다. 다른 품종보다 쉬라즈가 재배 지역의 기후와 지형을 상대적으로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피터 르만 와이너리는 설립 이후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왔다. 그중 '힐 앤 밸리(Hill & Valley)' 시리즈는 바로사와 에덴 밸리의 지형적 다양성을 담아낸 브랜드다. 언덕과 계곡이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기후와 토양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한 브랜드로, 와이너리 철학이 반영됐다.
'힐 앤 밸리 쉬라즈'는 밝고 선명한 보랏빛을 띠며, 자두와 라즈베리, 보랏빛 꽃, 블루베리 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입안에서는 블루베리와 자두, 다크 체리, 블랙커런트 같은 과일 향이 풍부하게 퍼진다. 부드럽게 구운 오크 향이 곁들여져 건강한 과일 풍미가 부드럽게 이어지며, 신선한 산도와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와인은 매운 소고기 볶음, 구운 초리조, 소시지, 치즈와 잘 어울린다. 숙성 잠재력도 10년 이상으로 평가된다. 2025 주류대상에서 신대륙 레드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공식 수입사는 롯데칠성음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