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파도가 왔다니까요!"

지난 4월 서울에서 만난 송정훈 컵밥(CUPBOP) 대표가 대화 도중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파도'였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거대한 파도가 왔으니, 망설이지 말고 빨리 올라타라는 의미다. 그의 말투는 비장하고 단호했다.

송 대표는 2013년 전 재산 1500만원으로 미국 유타에 2.4평 공간의 푸드트럭을 만들고 노량진 식 컵밥을 판매하기 시작해 현재 연간 600억원의 매출을 내는 식음료(F&B) 기업으로 키웠다. 한국에서 댄서로 활동한 그는 생존 영어만 겨우 하는 수준으로 미국에서 외식 사업을 일궜다. 2022년에는 미국 ABC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 '샤크 탱크'에 출연해 심사 위원 전원에게 투자 제안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푸드트럭 앞에서 포즈를 취한 송정훈 컵밥 대표. 그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새겨진 'Eat Cupbop, Poop Gold(컵밥 먹고 금똥 싸세요)' 문구는 브랜드의 대표 문구다. /컵밥 제공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창업 12주년을 맞고 누적 판매 3500만 개를 기록한 컵밥은 이제 미국을 벗어나 더 큰 세계로 향하고 있다. 미국 7개 주에 매장 60여개, 인도네시아 22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지난 7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첫 매장을 냈다. 캐나다 진출도 앞뒀다.

그 어느 때보다 한류의 영향력이 커진 지금 해외 진출을 꿈꾸는 외식 업계에 송 대표의 성공담은 교훈이 된다. 그가 지난 7월 '아웃 오브 더 트랙'이라는 책을 낸 이유도 그를 찾는 이들이 많아진 덕이다.

송 대표는 "개인적으로 케이(K)라는 단어를 좋아하진 않는다. K가 붙으면 의미가 국한되어 버리는 거 같아 한국, 코리아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면서 "한국에 치킨집이 5만 개가 넘는다는데,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계속해서 오는 파도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는 지난 4월 방한한 송 대표와 1차 인터뷰 후 서면 인터뷰를 더 해 완성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창업 12년을 맞았다. 감회가 어떤가.

"하루하루 산을 넘는 기분이다. 매일 새롭게 배우고 있다. 앞서 미국, 인도네시아에 이어 지난 7월 두바이에 첫 매장을 냈다. 캐나다 F&B 기업과도 매장 개설을 위한 계약을 맺었다. 해외 사업은 인위적으로 확장한 게 아니라, 모두 먼저 제안을 줘 성사된 것이다. 두바이의 경우 알파힘(Al fahim) 그룹 소속 RMAL 호스피탈리티가 5년 정도 요청을 해와 아랍에미리트에 10개 매장을 내기로 했다. 향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올해 6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첫 매장을 연 컵밥. 컵밥 포장재에 '컵밥으로 우주정복'이라는 한글 문구가 적혀 있다. /컵밥 제공

―처음부터 컵밥이 잘 됐나.

"처음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알려지지 않은 때라 미국인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도, 음식도 익숙하지 않았다.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재료(버섯, 시금치)를 빼고 당면, 당근, 양파 등만 남겨 현지화한 컵밥 메뉴를 만들었다. 소스도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했다. 또 써브웨이처럼 소스 맵기를 1~10단계로 만들어 선택하게 했다.

대신, 마케팅은 한국의 '정, 흥, 덤' 문화를 활용했다. 주문을 안 해도 덤으로 만두를 주거나, 잡채를 엄마처럼 무쳐서 '아~' 하고 입에 넣어주는 식이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웃으면서 공짜로 주는데 마다하는 이는 없었다. 우리는 정을 '코리안 러브', 덤을 '엑스트라 기빙'이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우리의 문화를 설명하고, 한글로도 알려줬다."

―최근 미국에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나.

"미국인들은 콘텐츠를 문화로 즐긴다. '스타워즈' 신작이 나오면 캐릭터 복장을 하고 보는 식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고 큰 손으로 공기놀이를 하고, 영화에 '까만 누들'(자장면)이 나오면 그걸 찾아 먹는다. 그런데 그걸 체험할(먹어 볼) 곳이 별로 없다.

20년 전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인들이 일식집을 많이 했다. 일본인인 척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라고 외치며 장사했다. 지금은 '안녕하세요'가 핫한 단어다. 하지만 그 '안녕하세요'를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많지 않다. 유타주의 경우 한국식 치킨집이 10개도 안 된다. 한식집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 하는 코리안 바비큐다."

―미국은 진입 장벽이 크다는 인식이 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모 맥주 프랜차이즈가 1000억원대 초반에 매각됐을 때 충격을 받았다. 매장이 1000개 정도 되는데, 점당 1억원의 밸류를 받은 거다. 매장 수가 2500개인 멕시칸 음식점 '치폴레'의 밸류가 한때 120조원까지 갔다. (현재 시가총액은 약 79조원) 차이가 뭘까? 바로 확장 가능성이다. 한국에선 더 이상 매장을 열 곳이 없는 거다.

미국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시장이다. 세계 상위 50개 F&B 브랜드 중 70~80%가 미국 브랜드다. 맥도날드(버거), 스타벅스(커피) 모두 미국에서도 1등, 세계에서도 1등이다. 한국에서 아무리 F&B를 잘 한다고 해도 1조원 밸류를 받는 곳은 없다. 하지만 미국엔 수십, 수백조 밸류를 받는 회사들이 널렸다. 왜 미국에 가야 하는지 충분한 답이 되지 않을까?

미국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식에 큰 기회가 왔는데, 플레이어가 부족하다는 게 안타깝다. 지금 미국에선 중국,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인 척 한식당을 운영한다. 진짜 코리안이 만드는 리얼 코리안 레스토랑이 많지 않다."

7월 9일 두바이 이븐 바투타 몰 컵밥 매장 오픈식 전경. UAE 첫 컵밥 매장이다. /컵밥 제공

―글로벌 외식 시장에서 한식이 경쟁력이 있다고 보나.

"한국에선 당연한 게 외국에선 당연하지 않다. 당연함이 여기선 특별함으로 바뀐다. 한국서 3000원 정도 하는 컵밥을 미국에서 1만5000원에 팔 수 있는 이유는 '프리미엄'이 붙어서다. 내 제품에 프리미엄을 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는 내가 한국에서 컵밥을 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한테 차고 넘치는 게 현지엔 없다. 디저트만 해도 한국에선 흔한 아기자기한 장식을 미국에선 못 한다. 대한민국을 나가는 순간, 프리미엄이 된다. 그 메리트를 여러분도 누리길 바란다. 한국에 치킨집만 5만 개라고 한다. 한국서 치열하게 싸우지들 말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와라."

―사업 조언을 구하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하나.

"얼마 전 멕시코에서 일주일간 왕복 7000km를 달려 사무실에 찾아온 분이 있다. 무작정 와서 컵밥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오신 분도 있고, 이메일, 인스타그램 DM도 많이 온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나도 하는데 당신도 할 수 있다'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보시라고 한다. 나도 처음 푸드트럭을 시작할 때 트럭부터 샀다. 메뉴도 개발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트럭을 사고 나서 메뉴를 정하고 몇 달 만에 사업을 시작했다."

―무모한 거 아닌가.

"실행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계속 생긴다. 처음 내가 유타에서 컵밥을 판다고 할 때 10명 중 9명이 반대했다. 지금은 시기가 아니네, 동업하면 망하네, 나이가 너무 많네. 준비가 됐으면 지체하지 말고 시작해야 한다. 전 재산을 투자해 트럭을 샀으니 해야 하는 거다. 완벽해지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실수하면서 발전하는 게 더 의미가 있다.

내 백그라운드(배경)를 보면 공부도 한 번 해본 적 없고 평생 춤만 췄던 사람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도 않고, 부모님이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도 하고 있다. 힘들게 하고 있긴 하지만. 생각의 차이인 거 같다. 생각에서 더 나아간 행동은 인생이 된다."

―향후 목표는 무엇인가.

"컵밥을 한식 대표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문화와 정체성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컵밥 매장에서 신라면이나 밀키스, 붕어싸만코 같은 한국 제품도 소개한다. 농심 등 일부 기업은 우리 니즈에 맞춰 제품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코카콜라와는 한글 브랜드를 쓰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매장 내 코카콜라 기계에선 한글로 '코카콜라'라고 적힌 문구를 볼 수 있다."

컵밥의 슬로건이 '컵밥으로 우주 정복'이다. 실질적인 목표는 전 세계 어딜 가도 컵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거다. 매장을 많이 열어 돈을 벌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저 브랜드 한국 사람이 만든 거야' '저기 가면 되게 재밌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어' '나도 저렇게 재밌게 일하고 싶어'라는 말을 듣고 싶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정말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파도를 탔으면 좋겠다. 같이 타야 재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