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007070)이 지난달 30일 KT&G(033780)와 손잡고 전자 담배기기 자체 브랜드(PB)를 선보였습니다. 전자 담배기기 PB상품을 내놓은 것은 편의점 업계 최초입니다. 이를 두고 보건·유통업계에서는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정부가 담배 규제 고삐를 죄는 분위기에서 규제 사각지대를 파고든 행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담배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지난달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고 담배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이 개정안은 지금까지 담배 규제를 받지 않던 합성 니코틴을 담배 범주에 포함하는 게 골자입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지만, 무리 없이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입니다.
합성 니코틴은 액상형 전자 담배 원료인데도 이제껏 담배 규제를 받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개정안이 국회 첫 문턱을 넘기까지 9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보건업계 관계자는 "참 힘들게 만든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KT&G와 GS리테일이 내놓는 '릴 하이브리드' 전자 담배기기는 액상과 전용 담배 스틱을 함께 사용하는 궐련형 전자담배입니다.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이번 담배법 개정안과는 상관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통업계와 보건업계는 전자담배기기가 여전히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전자 담배기기는 담배를 태우기 위한 필수 제품입니다. 사실상 담배와 마찬가지인데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사실상 합성 니코틴과 속성이 같다는 것입니다. 수년 전 담배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전자담배기기도 담배법 테두리 안에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경우 전자 담배를 정의하면서 '구성품'(components)도 포함시켰습니다. 이를 근거로 전자 담배기기를 규제하는 만큼 우리도 그렇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담배업계와 보건업계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합성 니코틴만 규제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유통업계와 보건업계가 걱정하는 건 앞으로 GS25가 PB 전자 담배기기를 활용해 앞으로 나설 다양한 마케팅 전략입니다. 전자 담배기기는 공산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담배에 걸리는 각종 규제를 피해 적극적인 판매와 홍보가 가능합니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편의점이 자주 시도하는 캐릭터 지식재산권(IP) 마케팅이 접목되는 상황입니다. 예컨대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층이 좋아하는 '산리오' 캐릭터를 전자 담배기기에 입혀서 한정판으로 판다거나,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전자 담배기기에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마케팅하는 것입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담배기기 PB상품을 토대로 화려한 디자인의 기기를 내세우면서 청소년·여성 등 새로운 흡연자를 끌어들일 위험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흡연을 장려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최근 규제 강화와 대척점에 있다는 것입니다.
시기적으로도 담배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 며칠 만에 전자 담배기기 자체 브랜드 상품을 내놓은 것은 문제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 기업 대관 담당자는 "담배법 개정안이 이제 막 국회 문턱을 넘은 상황이고 국정감사를 앞둔 상황에서 굳이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전자 담배기기의 PB상품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산업적으로는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편의점 담배 매출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흡연율이 줄고 편의점이 아닌 일반 매장에서 파는 합성 니코틴 담배가 유행한 데 따른 것입니다. 편의점 입장에서는 담배 매출을 늘리는 시도가 필요했습니다. KT&G 입장에서는 전자 담배 시장 점유율이 필립모리스에 밀리는 상황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총대'를 맨 GS25를 바라보며 득실을 따지는 분위기입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담배 매출을 올리는 데 기여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펼치는 금연 정책과는 배치가 된다는 점, 그간 해왔던 사회공헌 활동과 배치될 경우 진정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전자담배기기 PB상품 출시는 조심스럽다"고 했습니다. 실제 유통업계에서 GS리테일은 손꼽히는 지속가능경영 '우등생'입니다.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GS리테일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평가에서 통합 등급 A+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중 사회 부문에 대한 평가는 A+입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인기 캐릭터와 접목한 적극적인 마케팅까지 실제로 구현된다면, 이는 10대 청소년 비흡연자를 목표로 비흡연자를 흡연자로 만들 위험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이어 "특히 젊은 층이 '힙하다(최신 유행에 밝고 트렌디하며 개성 있는 상태)'고 생각하는 디자인을 입혀 한정품을 출시하는 등의 마케팅 아이디어는 신규 청소년 흡연자를 양산할 수 있다. 규제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