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고대 로마 제국은 방대한 도로망을 건설해 반도를 하나의 제국으로 엮었다. 그 중 '비아 아피아(Via Appia)'는 기원전 312년에 착공한 인류 최초의 고속도로로 꼽힌다. 로마에서 출발해 캄파니아 평야를 지나 타란토만과 아드리아해 연안 브린디시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군단의 병력과 물자가 이 길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고, 상인들은 와인과 올리브유, 곡물을 실어 나르며 로마의 부를 키웠다. 도로망은 제국의 혈관이 되어 뻗어나갔고, 로마를 기점으로 한 도로 총길이는 10만㎞가 넘었다고 전해진다.
로마가 촘촘한 도로망으로 세계를 연결했듯, 이탈리아 다섯 지역의 토착 포도 품종을 한 병에 담은 와인이 있다. 판티니(Fantini) 그룹의 '에디찌오네 콜렉션(Edizione Collection)'이다. 판티니 그룹은 1994년 이탈리아 아브루초 지역의 오르토나에서 필리포 바칼라로(Filippo Baccalaro), 발렌티노 쇼티(Valentino Sciotti), 카밀로 데 줄리스(Camillo De Iuliis) 세 파트너가 설립했다.
설립 초기에는 자체 포도밭을 갖지 않고 지역 농가와 장기 계약을 통해 포도를 공급받았다. 이후 남부 이탈리아 여러 지역으로 진출해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직접 소유·운영하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현재 판티니 소속 와인메이커는 21명에 달한다. 아브루초, 풀리아, 바실리카타, 캄파니아, 시칠리아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브랜드를 운영하며 연간 20개국 이상에 와인을 수출한다.
판티니는 '부티크 와이너리(boutique winery)' 정신을 강조한다. 대량 생산보다는 품질에 초점을 맞추고, 젊은 양조가들과 협업해 현대적인 양조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도는 전량 손으로 수확하고, 블록 단위로 구획해 개별 발효와 숙성을 거쳐 각 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다. 연구 개발을 위한 사내 전담 부서를 설립해 수확 전 포도의 향을 구성하는 물질을 분석, 농도가 가장 높은 곳을 파악한다. 또 130리터의 스테인리스 스틸 미세 양조기를 사용해 포도밭의 소규모 구획별로 맛을 전부 비교한다.
판티니 그룹은 남부 이탈리아의 잠재력을 믿고 토착 품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에디찌오네 콜렉션은 영국의 와인 평론가 휴 존슨(Hugh Johnson)이 판티니를 방문했을 때 제안하며 시작됐다. 그는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와인을 만들자"고 권했고, 쇼티 최고경영자(CEO)와 바칼라로 수석 와인메이커가 이를 실행에 옮겼다. 특정 지역, 빈티지의 제약에서 벗어나 여러 지역, 여러 해의 포도를 섞어 가장 이상적인 스타일을 구현한 블렌드 와인을 만들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디찌오네는 '이탈리아의 정수를 담은 예술적 조합'으로 평가된다. 2개 이상 주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빈티지를 표기하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에디찌오네 콜렉션은 아브루초, 풀리아, 캄파니아, 바실리카타, 시칠리아 등 남부 이탈리아 다섯 지역을 대표하는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다. 그 중 최상급 라인인 '에디찌오네 시그니처 콜렉션' 은 각 품종에서 가장 우수한 와인만을 선별해 블렌딩한 플래그십 와인이다. 라벨은 이탈리아 명품 남성복 브랜드 '브리오니(Brioni)'와 협업해 브리오니 원단을 재단한 것을 사용했다.
시그니처 콜렉션은 몬테풀치아노 33%, 프리미티보 30%, 산지오베제 25%, 네그로아마로 7%, 말바시아 네라 5% 비율로 블렌딩된다. 깊고 진한 가넷 루비 색상에 체리, 블랙커런트, 허브, 시나몬, 정향, 감초, 코코아, 미네랄 향이 피어난다. 신선한 산도와 균형 잡힌 바디감, 부드러운 타닌이 어우러져 긴 여운을 남긴다. 소스를 곁들인 비프 스테이크와 잘 어울리며, 단독으로 즐겨도 매력적인 와인이다. 2025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는 구대륙 레드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공식 수입사는 와이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