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K)뷰티의 성공 요인을 보면 성장 둔화에 빠진 다른 산업이 배울 점이 많습니다. K뷰티는 단순히 한류에 기대서 성공한 산업이 아닙니다."

베스트셀러 '트렌드 코리아'로 이름을 알린 김난도 작가(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최근 K뷰티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책 'K뷰티 트렌드'를 냈다. 김 작가가 대학에서 퇴직하고 작가·유튜버로 변신해 발간한 첫 번째 책이다. 6개월간 뷰티업계 종사자 35명을 만나 핵심 내용을 추렸다.

김난도 작가(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K뷰티의 성공 방식을 담은 신간 'K뷰티 트렌드'를 최근 발간했다. /조선DB

김 작가는 K뷰티를 주목한 배경에 대해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던 반도체나 자동차, 석유화학 등이 중국에 밀리면서 분위기가 좋지 않은 데 반해 K뷰티는 인디 브랜드 중심으로 잘 나가고 있다"면서 "K뷰티를 잘 연구하면 최근 정체된 한국 수출 산업에 좋은 교훈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김 작가는 한류 덕에 K뷰티가 성공했다고만 보는 건 안일한 분석이라고 했다. 문화 확산과 뷰티 산업 성공이 늘 맞물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작가가 K뷰티의 성공 요인으로 뽑은 결론은 K뷰티의 성공은 한류 덕이 아니라 트렌드 대응력 덕이라는 것이다. 조선비즈는 지난 1일 서울 용산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나 K뷰티의 성공 요인과 생태계, 전망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요즘 한류로 빛을 보는 산업이 많다. 굳이 화장품 산업을 연구한 이유는.

"많은 산업에서 한국이 고전하고 있다. 우리가 잘하던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 등 많은 분야에서 중국이 우리 대신 약진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뷰티 분야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도 대기업뿐 아니라 작은 인디 브랜드들이 미국·일본·중국 같은 화장품 본고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었다. 화장품은 단순히 가성비로만 팔리는 게 아니라, 문화적 매력·상징성·성분이 모두 중요한 까다로운 상품이다. 이런 상품에서 작은 기업들이 모여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신기했고, 다른 산업도 배울 교훈이 있다고 생각했다."

― K뷰티의 성공 방식을 다룬 책은 이미 많다. 차별점이 있다면.

"거시적인 맥락보다 현장의 작동 방식을 보고 싶었다. 예를 들어 코스맥스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제품을 내놓는지, 인디 브랜드는 어떤 회의를 통해 사업적 결정을 내리는지가 궁금했다. 뷰티는 유행이 유난히 빠르게 변하는 산업인데, 사실 지금은 자동차 같은 중후장대한 산업조차도 점점 '트렌드 산업'이 되고 있다. 정체된 한국 수출 산업에 좋은 교훈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 K뷰티의 성공에 가장 날개를 달아준 환경적 변화는 무엇인가.

"소비 행태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백화점 1층 매장에서 '샤넬이냐 랑콤이냐' 등 브랜드 중심의 구매를 했다. 이후엔 편집숍과 온라인을 거치며 상품 중심의 구매로 이동했다. 현재는 CJ올리브영을 중심으로 테마 중심의 구매로 확장됐다. 클렌저만 보고, 색조화장품만 보는 식이다. 온라인 분야 성장도 큰 역할을 했다. 온라인에선 브랜드보다 상품력이 훨씬 중요하다. 이 변화가 인디 브랜드에 기회를 열어줬다."

― 인디 브랜드는 어떻게 열린 기회를 잡았나.

"트렌드 대응력이 좋았다. 젊은 MD가 주축이 돼 소비자가 원하는 점을 빠르게 파악해서 아이디어를 던졌다. 연구개발(R&D) 실력이 좋은 코스맥스와 한국콜마가 아이디어를 받아 바로 제품으로 내놨고, 틱톡 등 온라인 마케팅에도 능했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다른 한 편엔 준비된 소비자가 있었다. 이른바 '코덕후(코스메틱 마니아)'다."

―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같은 대기업은 왜 경쟁력을 잃었다고 보나.

"자본력으로 시장 장악이 불가능한 시대다. 자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로레알이 세계 시장을 지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트렌드 대응력과 속도가 중요한데 이건 자본력이나 기업 규모와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에 지금 필요한 건 'Unlearn(배운 것을 버림)'이라고 본다. 이제껏 누린 성공 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LG생활건강에 비해 아모레퍼시픽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본다. 아모레퍼시픽은 오너십이 강해 'Unlearn'을 시도할 수 있는 기업이다. 대기업이 가진 과거의 성공 체험을 얼마나 과감히 버리느냐가 반등의 관건이다."

지난 7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코스모프로프 현장에서 올리브영 부스를 방문한 미국 바이어들이 K뷰티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CJ올리브영 제공

― '코덕후'를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한국 소비자의 특징은.

"한국은 화장에 진심인 나라다. 아침·저녁 루틴이 5단계 이상인 소비자가 많고, 남성 화장품 지출액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비자가 성분을 꼼꼼히 따진다. 이런 소비자가 많아지니 화장품 성분을 해석해 주는 애플리케이션 '화해' 같은 서비스가 나왔다. 브랜드만 보지 않고 제조사를 보고, 성분을 보는 소비자들이 많으니 한국에서 통하면 전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엔 제도도 한몫했다."

― 어떤 제도가 K뷰티 산업에 날개를 달아줬나.

"2012년 화장품법이 전면 개정됐다. 기존의 포지티브 규제(법률이나 정책에서 허용되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나열되지 않은 모든 것은 금지하는 방식)가 네거티브 규제(법령에서 금지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규제 방식)로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허용된 성분만 쓸 수 있었다. 화장품법 개정을 기점으로 화장품 성분이 다양해졌다. 현재 화장품을 보면 소재가 아주 다양하다. 쌀겨, 어성초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게 활용 가능하게 규제가 바뀐 것이다.

화장품 책임판매업자 제도(제조·판매업자 분리로 판매업자가 품질과 안전을 책임지는 제도)가 도입되고, 전 성분 표시제(용기에 주성분은 물론 유효성분의 분량, 보존제의 함량 등을 모두 기재하도록 한 제도)까지 도입되면서 기업의 자율성이 높아지고 혁신이 가능해졌다. 법 개정 이후 브랜드 수와 신제품 출시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작은 브랜드가 확실한 콘셉트와 성분으로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 책에 올리브영에 대한 언급이 많다. K뷰티의 성공에서 올리브영의 역할은.

"유통의 헤게모니가 온라인으로 옮겨 갔다지만 올리브영은 오히려 온라인의 강점을 흡수했다. 온라인이 매번 다른 화면을 보여주듯, 올리브영은 주기적으로 행사 테마와 매대 구성을 바꾼다. 소비자는 늘 새로운 발견과 경험을 한다. 쇼핑의 즐거움이 극대화된다는 뜻이다. 젊은 MD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20대 MD들이 제품 사입을 결정하고 소화하다, 역으로 기업에게 소비자 트렌드를 제안한다.

이런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올리브영은 단순한 유통 채널이 아니라 스스로 '보증 효과'를 만들어냈다. 올리브영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 아마존에서도 '올리브영 몇 번째 매대에 있는 제품인가'를 확인할 정도다. 무명의 인디 브랜드가 글로벌로 뻗어나갈 수 있는 후광 효과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K뷰티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학문적으로도 흥미로운 사례다."

― K뷰티가 직면할 가능성이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말한 성공 요인 중 가장 빨리 무너질 수 있는 게 속도력이다. 인디 브랜드가 성장해 글로벌 기업에 인수되거나, 대주주가 바뀌면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대기업은 본래 품질 관리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결국 현재의 성공 체험을 얼마나 적절히 '버릴(Unlearn)'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