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후 한미 통상 이슈가 불거기자 국내 식품업계가 유럽 시장 공략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그간 케이(K)푸드의 비(非)아시아권 수출 시장은 미국 중심이었지만, '한국의 맛'으로 유럽 식탁을 공략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17일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전 세계 외식(Consumer Food-service) 시장 규모는 약 3조2000억달러(한화 약 4415조원)다. 이는 소비자가 지출하는 외식 서비스 전체를 포괄한 수치다. 기업 간 거래(B2B) 시장과는 구분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외식 수요 확대는 현지 레스토랑·호텔의 식재료 활용 증가와 밀접하다"며 "K푸드 기업의 B2B 공급 기회도 함께 커지는 셈"이라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농식품의 유럽 수출액은 6억8000만달러(약 9382억원)였다. 전년 대비 25.1%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품목별 수출 증가율을 보면 전년 대비 라면은 52.1% 늘었고, 즉석밥·떡볶이는 41.4% 증가했다. 김치는 40.3%, 제과류는 11.4%, 음료류는 9.6%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K푸드 기업들은 기존 주력 시장인 미국 대신 유럽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삼양식품(003230)이다. 삼양식품은 필리핀계 외식기업 졸리비(Jollibee)와 손잡고 졸리비 영국 매장에 불닭소스를 공급하기로 했다. 올 하반기에는 불닭소스로 만든 감자튀김이 출시될 예정이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유럽 법인을 설립했다.

농심(004370)도 독일·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유통 채널 확대에 나서고 있다. 농심은 올해 3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유럽 법인을 설립했다. 유럽 내 물동량이 많은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을 포함한 항구·철도·육상 교통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독일·프랑스의 유통 채널을 확대하는 등 현지 유통망을 개척하고 있다. 농심의 지난해 유럽 매출은 8400만달러(약 1100억원)다. 오는 2030년까지 4배 수준인 3억3600만달러(약 4633억원)까지 끌어올리는 게 농심의 목표다.

서울 마포구 CU 홍대상상점 라면 라이브러리를 찾은 한 관광객이 라면 진열대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비비고 만두로 인지도를 올린 CJ제일제당(097950)은 김치 요리용 소스로 유럽 식품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달 중 영국과 프랑스 현지 주요 시장에 소스 제품 납품을 시작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 호텔 등에서 B2B 사업을 진행해 K소스에 대한 인지도를 쌓은 후 해외 가정용 제품 출시로 이어가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했다.

풀무원(017810)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영업 사무소를 개설한 것에 이어 올 하반기 유럽 내 판매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비건·건강식 제품군을 중심으로 현지 유통망을 모색하고 있다. 오뚜기(007310)도 해외 수요가 높은 라면·소스류를 중심으로 유럽 현지 유통망을 넓히는 중이다.

식품업계는 국내 식품사의 유럽 수출 비중이 지속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강화와 관세 압박이 계속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미국이 수입 식품에 적용하는 관세는 품목별로 2~25% 수준이다. 육류와 일부 가공식품은 상대적으로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 중심의 수출 구조는 통상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유럽 시장은 현지 유통망 확대와 맞춤형 제품 등으로 점유율을 높일 잠재력이 큰 편"이라며 "관세 관련 비용이 증가하고, 현지에서의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는 데 굳이 미국 시장에서 버틸 이유가 없다"고 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확실한 시장 변수에 대응하려면 수출시장 다변화는 필수적"이라며 "트럼프 정부의 상호 관세 정책으로 그간 상대적으로 틈새시장이었던 유럽 시장이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