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 오타고는 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포도 재배지다. 뉴질랜드 전체 와인 생산량에서 한때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던 이 산악 지역은 뛰어난 품질의 피노누아 덕분에 최근 가장 매력적인 와인 산지 중 하나로 부상했다.

이곳은 19세기 골드러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땅이기도 하다. 1861년, 호주 출신 탐광자 가브리엘 리드(Gabriel Read)가 가브리엘스 걸리(Gabriel's Gully)에서 금을 발견하면서 센트럴 오타고 전역에서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고 수천 명의 광부가 몰려들어 미개척지를 파고들었다.

클루서 강과 그 지류, 애로우 강, 와이타후나 계곡 등 바위와 자갈이 많은 하천 주변은 주요 금 채굴지로 번성했고,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옛 채굴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정착한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은 작은 시냇물을 뜻하는 '번(burn)'이라는 지명을 곳곳에 남겼다. 금맥이 사라진 뒤 센트럴 오타고는 목축업과 농업, 그리고 와인 산업으로 경제를 다변화했다. 20세기 후반부터 포도 재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뛰어난 와인 산지로 자리 잡게 됐다.

그래픽=정서희

이 시기 심장외과 의사 리처드 번튼(Richard Bunton)은 1991년 헤이스 호수(Lake Hayes) 인근에 3헥타르 규모의 포도밭을 취미로 일구기 시작했다. 이후 깁스턴 밸리(Gibbston Valley)와 파크번(Parkburn)으로 재배지를 넓혔고, 2002년부터 '락번(Rockburn)'이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센트럴 오타고의 바위(rock)와 시냇물(burn)에서 따온 이름이다. 골드러시 시절 광부들이 오가던 바위투성이 계곡과 작은 시냇물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독특한 자연과 역사를 와이너리 이름에 담은 셈이다

센트럴 오타고는 프랑스 부르고뉴와 유사한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지녔다. 여름철 긴 일조량, 시원한 밤 기온, 빙하가 남긴 자갈·모래 토양은 포도 재배에 이상적이다. 락번 와이너리 인근은 서쪽으로 연간 5000㎜의 비를 받는 산악 우림이, 동쪽으로는 연간 25㎜도 채 안 되는 건조 지대가 자리하는 극단적인 환경을 보여준다.

바위와 자갈이 많은 토양은 배수가 탁월해 포도나무가 깊게 뿌리 내리도록 하며, 낮에는 열을 저장하고 밤에는 방출해 포도의 숙성과 산미 유지에 도움을 준다. 락번은 피노누아를 중심으로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피노그리, 리슬링 등을 재배한다.

부르고뉴처럼 센트럴 오타고도 세부 지역별로 피노누아의 개성이 뚜렷하다. 깁스턴 밸리 피노누아는 보랏빛 꽃 향과 숲속 향이 어우러진 우아한 스타일이다. 반면 파크번 피노누아는 색이 더 짙고 과실 향이 풍부하며 단맛이 감돈다.

'락번 피노누아' 와인은 파크번 피노누아 85%와 깁스턴 밸리 피노누아 15%를 블렌딩해 양조한다. 양조 과정은 '핸즈-오프(hands-off)' 방식을 지향해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센트럴 오타고의 지리적 특성과 기후를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포도는 1~4일간 초기 침용 후 1주일간 발효하고, 이어 10~14일간 추가 발효와 침용을 거친다. 숙성은 프랑스산 오크에서 10개월간 진행하며, 이 중 30%는 새 오크, 22%는 1년 사용한 오크, 나머지는 2~3년 사용한 오크를 사용한다.

락번 피노누아는 자두와 검은 체리, 오크 향이 조화를 이루며 잘 익은 과일과 진한 모카 풍미가 긴 여운을 남긴다. 질감은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우아한 인상을 준다. 구운 돼지고기나 닭고기, 단단한 치즈, 버섯, 흙 내음이 느껴지는 뿌리채소와 잘 어울린다. 10~15년의 숙성 잠재력을 갖고 있다.

락번은 지난달 뉴질랜드에서 테이스팅 행사를 열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서 락번 총괄 매니저 팀 세번(Tim Severne)은 "락번 피노누아는 숙성을 위해 만들어졌다"라며 "락번 피노누아 2006년산도 아직 신선하고 아름다운 산미를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숙성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락번 피노누아는 제임스 서클링 91점, 로버트 파커 91점을 받았고, 2025 디캔터 월드 와인 어워드 은상,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신대륙 레드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비눔인터내셔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