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 재정 부담을 이유로 두 차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하 양곡법)이 지난 4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서 논란이 있었던 정부의 쌀 의무 매입 발동 기준을 강화한 덕이다.

다만 관련 업계에선 양곡법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쌀 과잉 생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타작물 전환을 유도해야 하는 데 구체적인 관련 정책은 없는 탓이다. 전문가들은 양곡법이 정부 공포 후 1년 뒤 시행될 예정인 만큼,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픽=정서희

5일 국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양곡법은 전날 오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양곡법은 쌀 과잉 공급으로 인해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정부가 과잉 공급분을 사들이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번에 통과된 양곡법은 지난 2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양곡법이 과도한 재정 부담을 주지 않도록 여야가 쟁점을 보완·합의한 내용이 담겼다. 주요 내용은 ▲쌀 이외 타 작물 재배 농업인에 대한 재정 지원 ▲과잉 생산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정부 의무 매입 발동 기준 강화 ▲벼 재배 면적 사전 조정·격리를 통한 선제적 쌀 수급 조절 등이다.

다만 관련 업계는 양곡법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분위기다. 쌀 과잉 생산을 대비한 타작물 전환을 유도할 구체적인 정책 방안이 보이지 않는 탓이다.

앞서 지난 2023년 농림축산식품부는 '전략 작물 직불제'를 도입해 벼 재배면적 8만㏊(헥타르)를 감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행 실적은 6만㏊에 그쳤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별로 공공 비축미 수매 인센티브까지 부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쌀을 대체할 작물이 논콩에 몰리면서 오히려 논콩이 과잉 생산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전략 작물 직불제 신청 면적 6만㏊ 중 논콩은 절반 이상인 3만5000㏊에 달했다.

쌀 생산·유통업체를 운영하는 A 대표는 "쌀 대신 논콩 전환이 많은 건 논에서 키우기에 적합한 작물이기 때문"이라며 "업계 입장에서 양곡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별다른 비용 투입 없이 대체 작물로 돈을 벌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18년째 쌀농사를 짓고 있는 B씨는 "다른 작물을 키워 얻는 소득이 쌀 생산 소득보다 안정적이라는 확신을 주는 정책이 나오지 않는 한, 농가 대다수는 쌀을 다른 작물로 전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이런 상황에서 최근 쌀값은 오름세다.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20㎏ 기준 쌀 소매 가격은 전날(4일) 기준 5만8636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13.77%, 평년 대비 12.4% 오른 상태다.

최근 쌀 생산이 감소한 배경엔 이상기후가 자리하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기준 전체 벼 재배면적의 3.6%에 해당하는 2만5065㏊가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봤다. 지난해엔 전남 지역에 집중된 폭우로 7791㏊의 논이 침수됐고, 이상고온 현상으로 폭염이 지속되면서 벼멸구 피해를 본 벼 재배면적은 3만4000㏊에 달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도 이상기후로 쌀 생산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생산자 중심 정책인 양곡법이 쌀값 안정화에 정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곡법이 정부 공포 후 1년 뒤 시행되는 만큼 예상되는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쌀 대신 다른 작물로 전환했는데 그 작물이 과잉 생산돼 가격이 폭락하는 부작용이 예상된다"라며 "타작물에 대한 시장 수요를 면밀히 조사하고, 특정 작물에 전환이 몰리지 않도록 품목을 다양화하는 등 정책을 정교하게 디자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사전에 쌀 또는 타작물 생산량을 조정하는 걸 얼마나 제대로 하느냐가 핵심 과제"라며 "법 시행 전 사전 생산 조정제 정착을 위한 정책적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특정 작물로만 전환하거나 쌀 과잉 생산이 되지 않도록 품목별 신청 면적에 따른 재배 관리와 예산 지원에 힘쓸 계획"이라며 "올해 2400억원 수준인 전략 작물 직불 예산을 2000억원 증액해 내년 이행 면적을 9만㏊까지 늘릴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