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인 토머스 하디가 1900년 발표한 시 '어둠 속의 지빠귀(The Darkling Thrush)'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이 시에서 지빠귀는 절망의 풍경 속에서도 노래하는 희망과 회복,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예술 속에서 지빠귀는 '계절의 전령'이자 '자연의 순환', '회귀하는 생명'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해 왔다.

그런 지빠귀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와인이 있다. 대서양과 피레네 산맥 사이, 프랑스 남서부 가스코뉴 지방의 와이너리 도멘 타리케(Domaine Tariquet)의 '프리미에 그리브(Premières Grives)'. 프랑스어로 '첫 번째 지빠귀들'이라는 뜻이다. 지빠귀는 유럽 전역에서 서식하는데 특히 늦가을 수확 무렵, 이 지역 포도밭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철새다. 포도가 완전히 익고 당도가 오른 순간, 지빠귀 떼가 날아들며 수확할 시기를 알려준다.

도멘 타리케의 역사는 16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전통 브랜디인 아르마냑을 생산해 왔다. 1912년부터 도멘 타리케는 그라사 가문이 운영하기 시작하는데, 코냑에 밀려 아르마냑 시장이 침체하자 이들은 아르마냑의 생산량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화이트 와인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우선 아르마냑에 쓰이던 위니 블랑(Ugni blanc)과 콜롱바르(Colombard)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에 도전했다. 현재 드라이 화이트 와인 9종, 스위트 화이트 2종,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 1종, 로제 와인 2종 등 다채로운 포트폴리오를 갖춘 지역 대표 와이너리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당시 50헥타르였던 포도밭은 현재 1125헥타르 규모로 성장했다. 프랑스 최대 규모의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점토·석회암과 황토 모래가 혼합된 토양은 포도에 풍부하고 복합적인 맛을 부여한다. 이 지역은 온화한 해양성 기후가 특징이다. 겨울이 혹독하지 않고, 여름의 더위는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선선하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은 피레네 산맥이 막아준다. 도멘 타리케의 프랑스 국내 연간 판매량은 500만병, 수출은 50개국에 400만병 이상이다.

그래픽=손민균

도멘 타리케의 프리미에 그리브는 1990년대 초 처음 출시됐다. 그로 망상 100%로 만들어진다. 이 품종은 껍질이 두꺼워 병해에 강하다. 포도는 늦게 수확할수록 더 많은 당분을 축적하는데, 그로 망상은 늦게 수확해도 산도를 잃지 않아 단맛과 신맛이 균형을 이룬다. 이에 프리미에 그리브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풍성하고, 달콤하지만 피니시가 상쾌한 독특한 매력을 갖게 된다.

포도는 향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한다. 수확 상자에 모아 즉시 드라이아이스로 덮는다. 수확한 포도는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밀폐 탱크로 운반하며, 온도 제어식 압착기에서 8~12시간 침용 과정을 거친다. 느리고 차갑게 발효한 이후 영하 2도에서 냉장 보관하며, 주문에 맞춰 병입한다.

프리미에 그리브는 은은한 금빛이 감도는 노란색을 띤다. 파인애플·망고 등 이국적 과일과 감귤 향이 인상적이다. 입에서는 설탕에 절인 듯한 과일이 느껴지며 갓 딴 포도 같은 신선함으로 이어지는 마무리가 특징이다. 풍부한 과일 향과 부드럽고 신선한 풍미가 조화를 이룬다. 식전주로도 훌륭하다.

신선한 과일샐러드, 반숙 또는 팬에 구운 푸아그라, 꼬치에 꿰거나 크림소스에 조리한 닭고기, 코코넛우유에 조리한 새우, 약간 매운 카레, 단단한 치즈나 블루 치즈와 잘 어울린다. 딸기·초콜릿 마카롱, 크림 브륄레, 바닐라 밀푀유와 같은 다양한 디저트와도 잘 어울린다. 대한민국 주류대상 2025 구대륙 화이트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국순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