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프란케티는 모든 것이 특이했다. 그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와인에 있어서는 진정한 혁신가였다. 최소 두 곳의 고급 와인 산지를 세계 지도 위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영국의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

"많은 사람들이 큰 꿈을 꾸지만 실제로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프란케티는 성공했다. 그의 와인은 '슈퍼 투스칸' 와인의 벤치마크가 됐고, 현재 엄청나게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 이안 다가타 박사)

"그의 재능과 비전은 타협이 없었다. 그는 깊이, 극단적 우아함, 생동감을 지닌 테루아 중심의 와인을 만든다. 이는 이탈리아 전역의 생산자들에게 영감을 줬다." (미국 전문지 와인 엔수지애스트)

세계적 와인 평론가와 전문가 및 와인 매체들은 2021년 작고한 안드레아 프란케티를 회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로 명성을 날린 프란케티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를 '괴짜'라고 평가한다. 와인 업계의 전통과 상식에서 벗어난 실험과 선택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는 와인메이커가 되기 전 로마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1980년대 초 미국으로 이주, 뉴욕에서 고급 이탈리아 와인을 유통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1990년대 초 이탈리아로 돌아와 토스카나 남동부 발 도르차(Val d'Orcia) 인근 고지대에 프랑스 보르도 품종의 포도나무들을 심기 시작했다. 이곳이 바로 '테누타 디 트리노로(Tenuta di Trinoro)' 와이너리다. 보통 토스카나에서는 산지오베제를 비롯한 이탈리아 토착 품종이 주류를 이루는데, 그는 이곳에 산지오베제는 전혀 심지 않았다.

와이너리의 이름을 그대로 딴 테누타 디 트리노로의 첫 빈티지(1997년)는 출시되자마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보통 이탈리아 토착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산미가 높고 탄닌이 강하다. 그런데 프란케티는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을 완벽하게 구현, 그랑 크뤼 급의 농도와 복합미, 숙성 잠재력을 보여주며 와인 평론가들을 놀라게 했다. 1999년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와인 업계 '올해의 인물'로 프란케티를 꼽기도 했다.

이후 그는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화산 지대, 시칠리아 에트나 산에 '파소피시아로'를 설립했다. 그는 에트나 와인을 발전시킨 전설적인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현재 프란케티의 아들인 벤자민 프란케티가 두 와이너리를 이끌고 있다. 그는 엔지니어링 전공 박사 학위를 받은 농업공학 전문가다. 토스카나 기후 변화에 맞춰 포도밭의 전체 토양을 지도로 만들고 분석하는 등 와인 제조에 현대적인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테누타 디 트리노로는 해발 450~600m의 고지대에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드물게 높은 지역이다. 이곳은 고대 해저의 석회암과 점토가 융기와 침식을 거쳐 형성된 토양으로, 과거에는 양을 기르거나 농작물을 재배하던 땅이었다.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이상적인 농촌 경관을 위해 계획된 지역으로 수 세기 동안 본래의 구조를 유지하며 보존됐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프란케티가 이곳에 심은 보르도 품종은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쁘띠 베르도 등이다.

그는 1헥타르당 최대 1만그루에 달하는 고밀도 식재를 도입했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포도나무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극도로 낮은 수확량을 추구했다. 이를 통해 포도 한 송이당 풍미를 극대화했다. 현재 전체 200헥타르의 포도밭 중 20헥타르에서만 포도를 수확한다. 또 구역을 50개로 나누어 세밀하게 관리한다.

프란케티는 블렌딩에서도 집요한 실험가였다. 배럴 단위로 와인을 시음하며 빈티지마다 수많은 배합을 시도했고, 그 작업을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와인은 매년 변화하는 예술 작품과 같다"라며 "사람들은 그해에 와인을 만드는 곳의 풍경에 영향을 받는다. 매일매일 변화하는 계절의 자연 경관에 감명을 받고, 그 감명을 자신이 만드는 와인에 담는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레 쿠폴레는 테누타 디 트리노로의 세컨드 와인으로, 1995년 첫 생산 이후 매년 블렌딩 비율을 달리하며 각 빈티지의 개성을 반영해왔다.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쁘띠 베르도를 조합한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 뒤 1·2·3년산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8개월간 숙성한다. 이후 시멘트 통에서 11개월간 숙성한다.

잘 익은 블랙 계열의 과일에 허브류, 담배, 스윗 스파이스 향이 주를 이룬다. 입안을 감싸는 탄닌이 탄탄하게 구조감을 받쳐주며 마무리까지 길게 이어진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이다. 2021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93점, 로버트 파커 94점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구대륙 레드 와인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금양인터내셔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