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004370)삼양식품(003230)이 수프 등 조미식품 제조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수프는 라면 맛을 결정하는 핵심 원재료다. 그간 농심과 삼양식품은 외부에서 라면수프를 납품받았다. 하지만 이번 인수를 통해 수프까지 자체 생산하면서 제품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해외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고추장·된장·불닭 소스 등 K(케이)소스 인기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역량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그래픽=손민균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수프 제조사 '세우'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세우는 농심의 대표 제품인 신라면에 수프를 공급해 온 업체다. 신동원 농심그룹 회장의 외가 5촌 당숙인 김정조 회장이 지분 18.18%를, 김 회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김창경 대표가 지분 60.24%를 각각 가지고 있다.

세우는 라면수프 같은 양념 분말 제품 외에도 간장·고추장·된장·쌈장 등 장류 제품도 생산·판매하고 있다. 농심홀딩스(072710) 측은 "기존 식품 사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간장·장류 및 조미식품 제조기업인 세우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라며 "확정된 사항은 없다"라고 했다.

불닭볶음면의 인기로 최근 시가총액 10조원 클럽에 입성한 삼양식품도 소스 제조업체 '지앤에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삼양식품이 2015년 냉동식품업체 새아침(현 삼양스퀘어밀)을 인수한 지 10년 만에 추진하는 인수합병(M&A)이다.

지앤에프는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소스 원료를 포함해 농심과 오뚜기 등 국내 주요 식품기업에 분말 소스를 납품해 온 업체다. 삼양식품은 지앤에프 지분 100%를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지앤에프는 수프·소스뿐만 아니라 코인 육수로도 유명한 업체"라며 "인수 완료 시점 등 확정된 건 없다. 여전히 여러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식품업계에서는 농심과 삼양식품의 수프 제조사 인수 추진에 대해 수프 내재화를 통한 제품 경쟁력·공급망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업계 관계자는 "라면의 맛과 품질을 수프가 좌우하는 만큼, 자체 생산을 통해 기술 유출도 막으면서 독자적인 맛을 선보일 수 있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수프는 라면 외에도 냉동식품·소스류 등 간편식 전반에 활용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조미식품 시장 확대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K라면으로 해외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라면회사들이 수프·소스를 ODM(제조자개발생산) 또는 수직 계열화 구조로 전환해 새로운 시장 확대를 위한 동력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 조미 소재 시장이 성장하는 추세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글로벌 조미 소재 시장의 지난해 규모는 약 433억달러(약 60조원)에 달한다. 오는 2030년 600억달러(약 84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고추장·된장·불닭 소스 등이 K소스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될 정도로 해외 시장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라며 "불닭 소스도 불닭볶음면 액상 수프에서 파생된 것이다. 소비자 취향과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 이번 인수의 핵심 요인일 것"이라고 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농심 대표 제품 신라면. /뉴스1

일각에선 농심의 경우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행보로 본다. 세우는 신동원 농심그룹 회장의 외가 5촌 당숙 가족이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농심그룹 계열사로 소속돼 있던 2021년 당시 세우의 매출 1028억원 중 61%에 해당하는 632억원은 농심과의 거래액이었다.

이후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독립친족경영'을 인정받고 기업집단에서 계열 분리됐다. 독립친족경영 인정제도는 기업집단 동일인(총수)의 친족 또는 임원(독립경영자)이 회사를 독립적으로 경영한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 회사를 기업집단에서 제외하고 해당 친족 등을 동일인 관련자에서 제외하는 제도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공정위는 그간 농심그룹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점을 지적해왔다"라며 "새 정부의 공정위원장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가 될 만한 요소를 미리 정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우 인수가 끝나면 이를 둘러싼 일감 몰아주기 의혹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