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 1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흥행에 농심(004370)이 무료 홍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농심 대표 제품인 신라면과 새우깡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온 덕입니다. 농심은 광고비 한 푼 들이지 않고 글로벌 입소문을 타게 됐습니다. 앞서 아이돌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로 바나나킥을 언급한 것에 이은 두 번째의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농심의 반응은 무대응에 가깝습니다. 케데헌 신드롬에 발맞춘 협업 제품이나 팝업스토어(임시 매장), 챌린지 영상 등 글로벌 소비자의 흥미를 이끌만한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픽=손민균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케데헌은 공개 5주 차(지난 7일부터 20일까지 집계) 총 2580만 시청 수를 기록해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누적 시청 수는 1억610만회에 달합니다. 케데헌 OST '골든'은 미국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과 글로벌 200 차트에서 모두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식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케데헌은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루미·조이·미라)가 악령들로부터 인간 세계를 지키는 내용이 담긴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악령 세계에서 탄생한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진우·애비·로맨스·베이비·미스터리)와 경쟁하면서 '데몬 헌터'로 활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에는 컵라면 '동심 신(神)라면'과 '매운 감자칩'이 나옵니다. 컵라면 이름은 '농심 신(辛)라면'을 떠올리게 했고, 감자칩 봉지에서 나온 과자 모양은 새우깡을 연상시켰습니다. 이후 글로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저 라면 어디서 판매하나", "한국 가면 꼭 먹어야겠다" 등의 글이 쏟아졌습니다.

이처럼 농심이 뜻밖의 세계적인 홍보 효과를 누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3월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미국 토크쇼 '제니퍼 허드슨 쇼'에 출연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과자로 농심의 바나나킥을 소개한 이후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바나나킥의 누적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6% 성장했습니다. 당시 농심의 주가도 4일 연속 상승해 시가 총액 2460억원 증가한 바 있습니다.

농심은 제니의 바나나킥 발언 때와 마찬가지로 케데헌의 인기에도 관련 마케팅 행보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두 번의 기회 모두 스스로 발전시키기보다는 '앉아서 효과만 누리는' 쪽을 선택한 셈입니다. 농심 관계자는 "넷플릭스·케데헌 제작사로부터 PPL 계약 등 협업 요청은 없었다"라며 "추후 협업할 여지는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데헌' 열풍을 목격하자마자 이번 '갤럭시 2025 언팩' 행사를 앞두고 협업·제작한 홍보 영상을 지난 8일 공개했다(왼쪽). 국립중앙박물관도 케데헌 신드롬에 힘입어 품절됐던 굿즈를 재출시했다. 현재 해당 제품은 완판된 상태다. /삼성전자 공식 틱톡·유튜브 계정 화면 캡처·국립중앙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이와 달리 삼성전자(005930)는 케데헌의 까치·호랑이 캐릭터인 서씨와 더피를 활용한 갤럭시 언팩 홍보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갤럭시Z폴드7의 후면 트리플 카메라 렌즈가 까치의 눈 3개를 닮았다는 밈(Meme)을 활용해 "까치가 갤럭시 언팩을 위해 차려 입었다"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해당 영상엔 "앞으로 나는 삼성 팬", "삼성폰을 사랑한다" 등 긍정적인 댓글이 달렸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더피와 서씨 캐릭터를 닮은 작호도(까치와 호랑이가 그려진 전통 민화) 모티브의 굿즈를 활용해 케데헌 열풍에 합류했습니다. 케데헌 신드롬으로 해당 굿즈 물량이 동나자, 지난 11일 2만900개의 굿즈를 추가 생산해 재출시했고, 5차 배송 물량까지 모두 완판된 상태입니다. 삼성전자와 국립중앙박물관 모두 케데헌의 파급력을 발 빠르게 브랜드 알리기로 연결한 것입니다.

식품업계에서는 농심이 케데헌 신드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만큼, IP(지식재산권) 활용에 따른 광고·마케팅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당장 준비하기엔 시간도 부족했다"라고 했습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케데헌에 열광하는 팬층과 농심의 타깃 소비층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농심은 젊은 세대 외에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는 브랜드다. 협업이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란 확신이 없었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농심 대표 제품 신라면 국내 광고 이미지. /농심 제공

농심은 국내 라면 업계 1위 기업입니다. 신라면·짜파게티·새우깡 등 단일 품목 기준 매출 1000억원 이상인 메가 브랜드 제품을 6개 이상 보유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최근 성과는 '불닭' 브랜드를 내세운 경쟁사 삼양식품에 비해 부족한 편입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농심이 삼양식품보다 먼저 해외에 진출했지만 최근 성과는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며 "케데헌 신드롬은 글로벌 시장에서 농심 브랜드 인지도를 보다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습니다. 이어 "틱톡 챌린지나 팝업스토어 등 소규모·단기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글로벌 소비자가 브랜드를 자발적으로 찾고 언급하는 건 꽤 드물다"라며 "국내 1위 타이틀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시대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높일 기회가 왔다면 농심도 이를 붙잡아야 한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