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인도 현지 법인(롯데 인디아)의 브랜드 출시 제안으로 시작한 게 '메이드 인 인디아' 빼빼로 연구·개발이었습니다. 인도 현지에서 생산·유통하려면 45도 폭염에도 초코 막대과자 형태를 유지하는 게 핵심입니다." (김장환 롯데중앙연구소 연구원)
"내열성이 높지만 단맛과 풍미는 유지한 초콜릿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배합률을 찾고, 바삭한 식감의 막대 과자를 현지에서 생산하기 위해 인도 곳곳에서 고단백 밀가루 원료를 찾았습니다. '메이드 인 인디아' 빼빼로를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손병철 롯데중앙연구소 연구원)
지난 15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롯데중앙연구소에서 조선비즈와 만난 손병철(47) 롯데중앙연구소 Sweet2팀 팀장(연구원)과 김장환(32) 롯데중앙연구소 글로벌팀 연구원은 '메이드 인 인디아' 빼빼로를 출시하기 위한 연구·개발 과정을 떠올리면서 이같이 말했다.
롯데중앙연구소는 롯데그룹의 식품 계열사 롯데웰푸드(280360)·롯데칠성음료·롯데GRS 등의 신제품·신메뉴를 연구·개발하는 곳이다. 이달부터 인도 현지에서 생산되는 롯데웰푸드의 대표 제품 빼빼로에도 이곳에서 연구·개발한 기술력이 담겨 있다.
인도는 1983년 빼빼로 브랜드 국내 출시 이후 첫 해외 생산지로 결정됐다. 약 14억 인구 대국으로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한국 문화와 K(케이)푸드에 대한 호감·인지도도 높다.
롯데웰푸드에 따르면 2024년 빼빼로 매출액은 2150억원이다. 이 중 710억원은 해외 50개국에 수출해서 벌었다. 2023년 빼빼로 수출액이 54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0% 증가했다.
이처럼 빼빼로의 수출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인도 현지 빼빼로 생산·유통은 롯데웰푸드의 해외 시장 공략에 중요한 모멘텀이 될 전망이다. 인도와 인접한 동남아사이와 중동 지역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원롯데 식품사 전략회의'에서 빼빼로를 오는 2035년까지 매출 1조원 규모의 글로벌 메가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빼빼로 인도 현지 생산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건 아니다. 당장 한국보다 무더운 인도 현지에서 생산·유통되는 빼빼로가 녹지 않고 '초코 막대 과자' 모양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 과제였다. 그 해답은 롯데중앙연구소 연구원 콤비가 3년간 매달린 끝에 찾아냈다. 기존 초콜릿의 녹는점을 올려 내열성을 높인 것이다.
김 연구원은 "초콜릿 내의 유지(지방산) 성격을 바꿔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은 카카오버터를 주재료로 써서 35~36도에서 완전히 녹는데, 더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유지를 섞어서 초콜릿 베이스를 잡아준 것"이라며 "지방산마다 다른 결합 구조를 이용해 녹는점을 조절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내열성을 높이면 고온의 날씨를 버티는 초콜릿이 될 수는 있지만, 입안에 들어갔을 때 초콜릿 특유의 풍미와 단맛 못 느낄 만큼 너무 녹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손 연구원은 "기존 초콜릿의 녹는점을 올려서 45도 날씨에도 빼빼로 모양은 유지할 수 있게 하되, 빼빼로를 먹었을 때 달다고 느낄 수 있도록 카카오와 감미료 등의 배합을 높이고 낮추는 등 수십 차례 테스트를 거쳐 최적의 배합을 찾았다"고 했다. 그 결과 40도 이상의 온도에도 일부 초콜릿이 말랑거릴 뿐 빼빼로 특유의 초코 막대 과자 형태는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올해 인도 시장에 선보이는 빼빼로 제품은 무엇인가.
"오리지널과 크런키 등 2종이다. 오리지널은 빼빼로의 상징성 때문에 출시하기로 했고, 크런키 제품은 롯데 인디아에서 제안한 맛이었다. 인도 시장 반응을 확인해서 그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제품 2종을 먼저 출시하기로 했다." (김장환 연구원)
"한국과 인도는 기후 환경이 다르다. 인도 사람들은 아몬드를 좋아하지 않더라. 또 아몬드 빼빼로를 포함한 다른 빼빼로 제품은 현지에서 재료를 공급하는 데 아직은 제약이 있어 초콜릿과 밀가루 등으로만 만들 수 있는 제품부터 집중 생산하기로 했다." (손병철 연구원)
ㅡ인도 현지 맞춤형 빼빼로를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람들이 초콜릿을 좋아하는 이유가 씹지 않아도 입에서 잘 녹아 단맛이 한순간에 퍼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꾸로 '안 녹는 초콜릿'을 만들어 달라고 하니까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내열성이 너무 강한 초콜릿은 입에서 아예 녹지 않아 단맛도, 코코아 향도 전혀 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더운 열기는 버티면서 사람들이 먹었을 때 입에서 녹으면서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배합률을 찾는 게 힘들었다." (김장환 연구원)
ㅡ빼빼로의 기둥인 막대 과자를 만드는 데도 애를 먹었나.
"인도 밀가루는 한국 밀가루와 전혀 다르다. 인도 현지에서는 고단백 밀가루 수요가 적은 편이다. 인도인의 주식인 '난'을 만들 때 현지인들에게 밀가루 내 단백질 함량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빼빼로 막대 과자는 공정상 얇고 가늘게 늘어나야 했기 때문에 밀가루 특유의 탄성이 필요했다.
반죽의 탄성을 결정하는 게 밀가루 단백질 함량이었던 만큼, 우리 연구소 사람들과 국내 제분 업체가 협업해 수차례 출장·조사를 거쳐 현지에서 알맞은 원맥을 찾아냈다. 덕분에 빼빼로 막대 과자의 성형 안정성과 특유의 바삭한 식감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손병철 연구원)
ㅡ나라마다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식감이나 향이 다르다. 인도 현지인의 입맛을 공략하기 위해 연구·개발한 제품도 있는가.
"국내에서 연구원끼리 제품을 만들어서 인도 현지 법인에 제안하면 우리가 뽑은 가장 좋은 맛과 별로인 맛이 현지 법인의 의견과 같았던 적이 거의 없다. 더구나 인도가 단 음식에 특화된 국가인 만큼, 달다고 느끼는 정도가 달라서 대화가 정말 중요했다." (김장환 연구원)
"취식 환경 자체를 인도에 맞춰서 먹어볼 때도 있었다. 인도 소비자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맛본 것보다 더 더울 때 빼빼로를 먹지 않겠나. 그래서 취식 환경을 인도 기온에 맞춰서 덥게 한 상태에서 빼빼로를 먹어보고 더 개선돼야 할 점을 찾기도 했다." (손병철 연구원)
ㅡ빼빼로 외에 인도에서 선보이고 싶은 제품이 있나.
"당장은 기존에 출시한 초코파이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빼빼로 세 품목에 집중하려고 한다. 인도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라는 단어를 쓸 수 없어서 '크런치바'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돼지바 아이스크림도 잘 팔리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가 원해서 브랜드를 출시한다기보다는 인도 시장에서 원하는 맛이나 제품이 무엇인지에 따라 필요한 기술을 연구·개발할 것 같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 (손병철 연구원)
ㅡ인도 외에 빼빼로 현지 생산 또는 수출을 고려한 국가도 있나.
"'메이드 인 인디아' 빼빼로가 현지 시장에서 잘 돼야 그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인도와 비슷한 기후인 동남아시아나 중동 등 주변국에도 수출하고픈 마음은 있다. 물론 이 부분은 글로벌 전략·마케팅 부서 등과 협업해 대화하면서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할랄 인증'은 미리 국가마다 인정하는 공인 기관에 맞춰 전부 다 받고 있다. 인도 빼빼로도 기본적으로 할랄 인증을 받은 상태지만 중동 지역 수출까지 염두에 두면 할랄 인증 3종 세트를 다 받아야 한다. 올해 하반기까지 할랄 인증 부분은 마무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손병철 연구원)
ㅡ앞으로의 포부는.
"동북아시아에서는 빼빼로와 포키(Pocky·일본 과자 제조사 에자키 글리코의 초코 막대 과자 브랜드)가 비등비등하게 잘 팔리는 편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포키가 더 많은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2035년까지 빼빼로가 1조 매출을 달성한 메가 브랜드가 돼서 포키랑 어깨를 견줄 정도의 경쟁 제품이 됐으면 좋겠다. 그만큼 우리도 전 세계인이 빼빼로를 먹도록 연구·개발에 매진할 것이다." (김장환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