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류 시장에 오크향을 입힌 소주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위스키처럼 오크통에서 숙성한 원액을 소주 원액에 블렌딩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시도는 예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최근 들어 위스키·와인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화요가 지난 6월 신제품 '화요 19금(金)'을 출시했다. /화요 제공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증류식 소주 전문 브랜드 화요는 지난달 '화요 19금(金)'을 출시했다. 국내산 쌀을 발효·증류한 후 옹기에서 숙성한 원액에 오크통에서 숙성한 목통 증류 원액(10.9%)을 블렌딩한 제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19도로, 기존 화요25·41·53 시리즈보다 낮다. 고도주 중심이었던 기존 제품군과 달리 저도주의 대중성에 오크 숙성의 고급 향을 더했다는 게 화요 측의 설명이다.

금복주 역시 지난 3일 '오크젠'을 리뉴얼 출시했다. 국내산 쌀 증류 소주에 오크통에서 숙성한 보리 증류 원액을 블렌딩했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제로슈거' 제품으로, 알코올 도수는 16도다.

이들 제품은 위스키 업계에서 널리 쓰이는 블렌딩 기술을 소주에 차용한 것이다. 위스키는 서로 다른 숙성 연도와 오크통, 원액을 조합해 최종 풍미를 완성하는데, 오크 소주 역시 숙성 원액을 소량 혼합해 복합적인 향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소주 원액 전체를 오크통에서 장기 숙성하기엔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라며 "블렌딩을 통해 풍미는 살리고 가격은 낮추며 대중성을 확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양소주도 올해 초 '선양오크'를 선보였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희석식 소주를 베이스로 하되, 여기에 오크 숙성된 증류식 원액을 소량 섞었다는 점이다. 희석식 소주는 주정을 물에 희석하고 감미료 등을 넣어 만든 저가형 소주다. 생산 효율은 높지만 향미가 단조롭다.

이런 특성을 갖는 희석식 소주에 향의 층위를 다양화하는 오크 숙성 원액을 섞은 것은 실험적인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선양오크도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제로슈거 제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14.9도다.

소비자들 반응도 나쁘지 않다. 선양오크는 GS25 편의점에서 2월 말 출시 이후 3개월간 약 200만 병이 판매됐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 관계자는 "기존 소주에 오크 원액을 더해 깊은 풍미를 강조한 점과 저도주, 제로슈거 등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한 차별화 상품 전략이 선양오크 흥행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선양 오크' 소주가 지난 2월 출시 이후 3개월 만에 GS25에서 누적 판매량 200만 병을 돌파했다. /선양소주 제공

위스키, 와인 등을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나무에서 우러나는 바닐라, 코코넛 등의 부드러운 향과 질감이 더해진다. 소주에 이를 접목하면 기존의 날카로운 알코올 향을 누그러뜨리고 향과 풍미가 살아난다. 위스키와 와인에서 강조되는 향미 중심 음용 문화가 소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최근의 저도수 트렌드에도 오크 소주가 들어맞는다. 소주가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라 한 모금씩 향을 즐기며 마시는 술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술의 맛과 경험을 중시하게 되면서 풍미가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라며 "특히 MZ세대는 위스키, 내추럴 와인, 크래프트 맥주 등 다양한 주류를 경험하며 술 자체의 풍미와 구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소주 역시 즐길 수 있는 술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주 업계는 오크 숙성 소주가 단기 유행을 넘어 프리미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하이트진로는 오크통에서 24년 이상 숙성한 일품진로 신제품을 한정 판매했다. 주기적으로 오크통의 위치를 바꾸고 교체하는 등 오랜 세월 동안 최적의 온도, 습도를 맞추며 엄격하게 관리한 제품이다. 최종 병입 단계에서 물을 타지 않고 숙성한 원액을 그대로 담았다.

업계 관계자는 "오크 숙성은 프리미엄 주류의 상징적인 요소이기도 하다"라며 "소주의 프리미엄화와 스토리텔링이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주목받고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