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광고는 시대를 대표하는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우며 늘 대중의 관심을 모아왔습니다. 소주는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이 즐기는 국민 술인 만큼, 광고 모델 선정이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하이트진로(000080), 롯데칠성음료 등 전국구 브랜드뿐 아니라 지역 소주 역시 지역 출신 연예인이나 친숙한 인물을 내세워 친밀감을 강조하는 전략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부산의 대표 주류기업 대선주조가 기존과는 다른 광고 캠페인을 선보여 화제입니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선주조는 '지방소멸방지, 대선으로'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를 공개했습니다. 대선주조는 그동안 배우 한예슬, 치어리더 박기량, 걸 그룹 마마무 등 유명인을 모델로 기용해 왔는데요, 이번엔 연예인 대신 지방 소멸을 직설적으로 경고하는 메시지를 택한 겁니다. 지역 소주 업계의 절박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파격적 시도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대선주조 광고 포스터./대선주조 제공

대선주조의 지난해 매출은 519억원, 영업이익은 24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7.8%, 57.1% 감소했습니다. 2018년 매출 812억원, 영업이익 104억원을 기록한 이후 수년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소주는 대선주조만이 아닙니다. 제주도 내 군소 6개 소주 업체를 통합해 설립된 한라산의 작년 매출액은 216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줄었습니다. 영업손실은 4억원으로 전년(3억원)보다 커졌습니다.

전남의 보해양조는 지난해 매출 876억원, 영업이익 25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했으나, 매출은 전년 대비 5.9% 줄었습니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05억원, 1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2%, 9.1% 감소했습니다.

보해양조는 최근 오너 3세 자매가 경영 일선에서 잇따라 물러나며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데요. 회사는 임지선 전 대표와 임세민 전 이사가 일신상의 사유로 퇴사했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실적 부진을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내 소매 소주 시장에서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의 점유율은 80%에 달합니다. 나머지 10% 남짓의 시장을 대선주조, 보해양조, 한라산, 무학(경남), 금복주(대구·경북), 선양(대전·충남) 등 지역 소주 기업들이 나눠 갖고 있죠.

업계 관계자는 "전국구 브랜드의 자본력과 유통망, 공격적인 마케팅에 밀려 지역 소주 업체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의 지난해 연간 광고선전비는 각각 1840억원, 1265억원으로 지역 소주 제조사의 연 매출을 뛰어넘습니다. 업계에선 대기업 주류사의 영업력이 지방까지 확장되면서 지역 소주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역 소주의 투자 여력은 제한적"이라며 "대선주조의 이번 광고는 대형 모델을 기용하는 마케팅에 집중하면 수익성이 더 악화하는 악순환에 빠져들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주 전체 소비가 줄고 젊은 세대의 소주 이탈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는데요, 대형 브랜드들은 잇따른 팝업스토어(임시 매장) 운영은 물론 저도수, 제로 슈거(무설탕) 트렌드에 발맞춰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반면, 지역 소주 업체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신제품 개발이나 브랜드 리뉴얼(재단장)에 투자할 여력조차 부족한 상황입니다. 지역 소주 업체들이 대기업의 마케팅 공세에 맞서기엔 역부족인 셈입니다.

지방 인구 유출도 지역 소주 업체들을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통계청의 '2024년 국내 인구이동 결과' 자료를 보면 지난해 부산 순유출 인구는 3년 만에 최대치인 1만3657명을 기록했습니다. 수도권 3개 시도로 순유출된 인구는 비수도권 14개 시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큽니다. 대선주조가 '지방 소멸 방지'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울 만한 상황인 것이죠.

업계 관계자는 "지역 소주가 젊은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접점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며 "단순히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성과 스토리텔링을 강화한 차별화 전략이 절실하다"라고 했습니다. 지역 소주 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