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글로벌 주류 기업 디아지오(Diageo)가 이탈리아 현지 운영 법인과 생산 시설을 매각하며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수년간 실적 부진을 겪은 디아지오는 이번 자산 매각을 통해 고정비 축소와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근처 디아지오 공장. 사진은 기사와 무관./로이터 연합뉴스

디아지오는 24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운영 자회사와 생산 설비를 이탈리아 식음료 기업 뉴프린스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뉴프린스는 뉴라트 푸드(Newlat Food)에서 지난 5월 사명을 변경한 회사다. 특히 이번 거래는 단순한 공장 매각이 아닌, 운영 법인 전체를 포함하는 자산 처분이다.

거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연내 규제 당국의 승인 절차가 마무리되면 최종 매각이 완료될 예정이다. 디아지오는 이번 거래를 "시장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최적화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디아지오 소속이던 349명의 직원 전원은 뉴프린스로 고용이 승계된다. 생산량 유지 및 제품 지속 개발에 대한 약속도 이뤄졌다.

이번에 매각된 법인과 생산 시설은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의 산타 비토리아 달바 지역에 있다. 디아지오는 구체적인 제품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2024년 연례보고서에서 이탈리아에서 보드카, 럼, 무알코올 음료 등을 생산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뉴프린스 역시 지난 5월 공장 인수 계획을 발표하며 "알코올 및 무알코올 제품, RTD(즉석 음료) 등 다양한 포맷의 음료 생산에 활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디아지오는 이번 매각을 계기로 본격적인 구조조정 국면에 돌입한 것으로 해석된다. 디아지오는 지난달 "기존의 소규모 브랜드 매각 수준을 넘는 대규모 자산 정리에 착수하겠다"며 강도 높은 사업 재편 계획을 예고한 바 있다. 디아지오는 지난해 과일 리큐르 브랜드 '사파리(Safari)', 럼 브랜드 '팜페로(Pampero)' 등을 단계적으로 정리해 왔다. 이번 이탈리아 법인 매각은 그보다 훨씬 큰 규모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생산 거점 통합 작업도 병행되고 있다. 2024년 1월에는 영국 체이스 증류소를 폐쇄하고 생산 기능을 스코틀랜드로 이전했고, 2월에는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있는 160년 역사의 제조 시설도 문을 닫았다. 디아지오는 올해부터 오는 2028년까지 무역 투자, 광고비, 공급망 운영비 등에서 5억달러(약 7000억원)를 절감하겠다는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디아지오의 구조조정은 재무 건전성 회복을 넘어 브랜드 포트폴리오의 고급화 전략과도 연결돼 있다"며 "공장이나 브랜드 하나하나가 단순 정리가 아닌 장기적인 글로벌 전략 변화의 신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디아지오는 지난해 7~12월 109억달러(14조8700억원)의 매출을 냈다. 전년 동기 대비 1%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영업 이익은 31억5500만달러(4조3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으며, 증권가 전망치인 33억1000만달러(4조5100억원)를 하회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22억1000만달러(3조144억원)에서 19억3500만달러(2조6400억원)로 감소했다.

실적 악화에 따라 주가도 하락세다. 디아지오의 주식은 런던 증권거래소(LSE)에 상장돼 있고 미국에서는 미국예탁증권(ADR)으로 거래된다. 지난 3년간 디아지오 주가는 47% 하락했다. 지난해는 26% 내렸다.

한국 시장에는 당장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디아지오가 글로벌 차원에서 브랜드 구조조정을 이어갈 경우, 한국 시장에서 유통 중인 일부 제품이 단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올해 상반기 '글렌 엘긴 12년', '탈리스커 스톰' 등 일부 위스키 제품이 국내 시장에서 판매 종료됐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 2009년부터 작년까지 희망퇴직을 6차례 진행하기도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본사 차원에서 해외 법인이나 생산 시설을 매각한다고 해서 당장 한국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디아지오가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정리한다면 한국 시장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디아지오는 스카치 위스키 '조니워커', 아일랜드 흑맥주 '기네스', 보드카 '스미노프', 크림 리큐르 '베일리스' 등 200여 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