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JINRO) 소주를 한류에 편승해 잠깐 반짝이고 마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의 삶에 스며든 술로 자리 잡게 하겠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는 지난 1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필리핀 시장에서의 진로 대중화에 대해 이 같은 의지를 밝혔다. 김 대표는 필리핀에 얻은 성공 전략을 토대로 동남아 전체로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지난 18일 필리핀 마닐라 기자 간담회에서 하이트진로 김인규 대표이사가 발표하고 있다./하이트진로 제공

하이트진로는 진로 소주의 필리핀 현지화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수출 물량 수치로 봤을 때 그렇다. 관세청 무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필리핀 소주 수출 총액 중 하이트진로가 차지하는 비율이 67%를 기록했다. 필리핀으로 나가는 소주 10병 중 6병이 진로라는 뜻이다.

필리핀은 한인 소비 중심에서 벗어나 현지 소비자 위주로 성격이 확연히 바뀐 시장이다. 필리핀 내 재외 동포 수는 꾸준히 줄었지만, 소주 수출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2013년 필리핀 재외 동포 수는 약 8만8000명이었다가 2023년엔 3만4000명으로 60%가량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하이트진로의 필리핀 소주 수출량은 약 3.5배 증가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약 41.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넘어서 새로운 100년을 시작한 만큼 올 한 해가 매우 중요하다. 해외시장에서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 중 필리핀을 동남아시아 국가 중 현지화가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시장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이트진로는 약 10년 전인 2016년부터 소주 세계화를 선언하고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필리핀을 동남아 시장 확장의 전략적 교두보로 삼고 2019년 7월 현지 법인을 만들었다.

성공 배경엔 한류가 있었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필리핀 소비자들이 소주에 관해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김 대표는 "한류를 이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이용해서 가자고 판단했고 분명한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했다.

하이트진로 제품이 진열된 현지 유통채널 퓨어골드(Puregold). 퓨어골드는 필리핀 특유의 구멍가게인 사리사리 스토어(sari-sari store) 운영자들이 방문해 물건을 구매하는 빈도가 높은 유통채널이다. 사리사리라는 단어는 타갈로그어로 잡동사니를 뜻하는데 필리핀 경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중적인 유통 채널이다./하이트진로 제공

한류에만 기댄 것은 아니다. 필리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선보인 점, 현지 유통채널을 확장한 점도 성공 요인이다. 처음 하이트진로는 '과일소주'라고 불리는 과일 리큐르 중심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김 대표는 "과일소주로 진로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이젠 일반 소주인 참이슬 후레쉬와 오리지널도 선택하고 있다"고 했다.

중산층 이상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S&R 멤버십 쇼핑) 등 다양한 현지 유통 채널에 입점한 것도 진로 소주의 필리핀 시장 안착의 요인이다. 이를 위해 하이트진로는 현지 최대 유통사인 PWS(Premier Wine&Spirits, Inc.)와 SM그룹 등을 활용했다. 우리로 따지면 이마트와 롯데마트, 코스트코 등을 공략한 셈이다. 또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도 진로 소주의 자리를 마련했다.

김 대표는 "이제 필리핀에서 소주는 더 이상 한국 음식점에만 찾을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라며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편의점, 마트, 온라인 쇼핑몰, 심지어 독립된 카페 등에서도 참이슬 진로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진로 소주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스며들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롯데칠성이나 OB를 경쟁사로 생각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여행을 가고, 운동을 하는 등 소비문화를 경쟁 대상으로 보고 있다"면서 "같은 맥락에서 해외 시장을 공략하면서도 단순히 제품 수출에만 그치지 않고 진로소주와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 문화를 조성하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사람과 문화를 연결해 주는 촉매제로서 해외 시장에서의 진로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하이트진로는 오는 2030년까지 진로소주로 해외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유지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다소 공격적인 목표지만 수정하진 않았다"면서 "2027년부터 베트남 공장에서 양산이 시작되면 동남아 시장에서 물류 등 원가 절감이 가능하고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 시장에서 또 한 번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