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회화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 역동적인 장면 연출, 그리고 현실을 뛰어넘는 감정의 깊이로 유럽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바쿠스'(Bacchus)다. 로마 신화 속 술과 축제의 신인 바쿠스를 젊고 관능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바쿠스는 포도잎과 덩굴로 만든 화환을 머리에 쓰고, 왼손에 포도주잔을 들어 관객에게 건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대화한 카라바조 특유의 회화 기법은 루벤스, 렘브란트 등 후대의 바로크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앞선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 묘사에서 이상적인 미와 조화로운 비율, 부드럽고 균일한 조명, 고귀한 인물상을 강조했던 것과는 뚜렷이 대조된다.

바로크 미술은 사실적이고 생생하며 격정적이다. 카라바조는 인물의 감정과 삶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바쿠스를 위엄있는 신의 모습이 아니라 술에 취한 듯한 붉은 얼굴과 나른한 표정을 한 현실적인 청년의 모습으로 그렸듯, 그는 예수와 사도들도 평범한 농민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일부 성직자들은 신성모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바로크 화가들이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생명을 포착하듯, 프랑스 상파뉴 지역의 샴페인 하우스 '고세(Gosset)'는 자연의 에너지와 생동감을 그대로 담기 위해 젖산 발효(말로락틱 발효)를 하지 않는 전통을 수백 년째 이어오고 있다. 젖산 발효는 포도 속의 날카로운 사과산을 부드러운 젖산으로 전환해 와인의 산도를 낮추는 공정이다. 고세는 이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포도 본연의 산미와 신선함, 그리고 떼루아가 주는 특성을 최대한 보존한다. 와인 속에 자연의 에너지와 생동감을 그대로 담기 위해서다.

그래픽=손민균

다만 고세가 가장 처음 생산했던 와인은 비(非)발포성 레드 와인이었다. 피에르 고세(Pierre Gosset)는 바로크 미술이 태동하던 1584년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아이(Aÿ) 마을에 와이너리를 세웠다. 설립 후 200년 가까이 고세 가문은 레드 와인 생산에 집중했고, 샹파뉴의 와인은 부르고뉴의 와인과 함께 프랑스 왕가의 식탁에 오를 만큼 명성을 떨쳤다.

18세기 들어 샹파뉴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발포성 와인이 등장하면서 고세 역시 점차 샴페인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고, 1952년 와이너리의 공식 명칭을 '샴페인 고세'로 변경하며 본격적으로 샴페인 양조에 집중했다. 44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온 고세는 오늘날 샴페인 하우스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2013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현존하는 문화유산'(Living Heritage Company) 상을 받았다. 2024년에는 프랑스 와인 매체 '라 르비 뒤 뱅 드 프랑스'(La Revue du vin de France)가 선정한 최고의 샴페인 하우스 8위에 올랐다.

고세는 100년 이상 파트너십을 유지해 오고 있는 200여명의 농부로부터 대부분의 포도를 공급받는다. 포도원은 그랑 크뤼, 프리미에 크뤼 등급으로 지역은 샹파뉴 전체에 걸쳐 있다. 각각의 지역의 떼루아의 개성을 살리고 품종의 특성을 보존하기 위해 포도원별, 품종별로 세밀하게 분류해 발효한다.

봄이 끝날 무렵에 병에 담아 최소 4년 이상 셀러에서 숙성하는데 이는 법적 기준의 세 배에 달하는 기간이다.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간과 자연의 흐름 속에서 와인의 구조와 풍미를 다듬는 셈이다. 특히 고세는 18세기에 특허를 받은 병 모양을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얇은 병목과 넓은 몸통, 짙은 초록색이 특징인 독특한 병은 장기 숙성에 유리하다. 오랜 숙성 기간 동안 효모와의 접촉을 통해 크리미한 질감과 복합적인 아로마를 완성한다.

고세 그랑 리저브 브륏은 고세 하우스의 철학과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샴페인이다. 샤르도네 45%, 피노누아 45%, 피노 뮈니에 10%를 블렌딩했다. 밝은 황금빛 색깔을 띄며 우아한 흰 꽃향과 말린 과일, 진저 브래드 향이 식욕을 돋게 한다. 샤르도네의 산뜻한 산미와 미네랄리티, 피노누아의 구조감과 깊이, 피노뮈니에의 풍부한 과실향이 조화를 이루며 긴 여운을 남긴다. 굴, 새우, 스파이시한 오리, 닭 요리, 간단한 치즈까지 다양하게 어울린다.

2020년에는 와인 전문지 '디캔터'로부터 93점, 세계적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92점,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92점을 받았다.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스파클링 와인 10만원 이상 부문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레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