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공간을 기능이 아닌 감성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는 '건축은 예술'이라는 신념 아래 조각과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20세기 최고의 건축물로 평가받는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건축 평론가 허버트 무샴프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마릴린 먼로의 환생이다"라며 "관능적이고, 감정적이고, 직관적이며, 표현주의적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건축물에 영혼을 불어넣어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프랭크 게리는 곡선과 비정형 형태, 반사되는 금속의 질감을 통해 빛과 공기, 문화와 기후의 감도를 건축 언어로 풀어낸다. 건축을 조각처럼 다루며, 사용자와 상호작용을 하는 예술로 여기는 그의 철학은 스페인의 오래된 와이너리 한가운데서도 이어졌다. 스페인 리오하 알라베사 지역의 '마르께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 1858년 설립된 이 유서 깊은 와이너리는 2006년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독특한 호텔을 품었다.

"건축은 그 시대와 장소를 말해야 하지만, 동시에 영원함을 갈망해야 한다." 프랭크 게리(Frank Gehry)

그의 철학처럼 마르께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에 들어선 호텔은 장소의 정체성을 담되, 영원함을 지향하는 공간이다. 150년 넘는 와인 양조의 역사가 거장의 손끝에서 감각적 건축으로 재탄생했다. 호텔 외관의 금빛·은빛·자줏빛의 티타늄 패널과 유려한 곡선은 그의 건축 특징을 드러내면서도 각각 와인병과 라벨, 포장을 상징한다. 곡선과 재료의 조화, 빛의 흐름은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니라, 와인의 정체성과 숙성의 시간을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 철학이 브랜드의 예술적 확장을 가능하게 한 셈이다.

마르께스 데 리스칼의 독특한 호텔과 와이너리는 조형적 미학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이 와이너리는 프랑스 유명 와인 산지인 보르도 스타일을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선구자였다. 양조 과정에서 포도 줄기를 제거하고 보르도 지역 통나무 통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1895년에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국가 와인 가운데 처음으로 '프랑스 보르도 만국 박람회 최고 영예의 상'을 수상했다. 와인의 명성이 높아지자 모조품이 시장에 유통됐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병을 금색 철사로 감싸는 상징적인 포장 방식을 도입했다. 철실을 뜯지 않으면 와인을 마시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브랜드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남아있다.

그래픽=정서희

마르께스 데 리스칼에서 생산한 레세르바 등급의 와인은 접근성과 품격을 동시에 갖춘 대표적인 제품이다. 리오하(Rioja Alavesa) 지역의 바위와 점토가 섞인 석회질 토양은 포도에 강건한 타닌과 생생한 산도를 부여한다. 이 지역의 해발고도는 400m 이상으로 일교차가 커, 과일 향과 구조감을 함께 갖춘 와인을 만들기에 이상적이다.

마르께스 데 리스칼 레세르바는 1970년 이전에 식재된 '올드 바인(Old Vine)' 포도로 양조하며, 템프라니요(Tempranillo)를 중심으로, 그라시아노(Graciano)와 마주엘로(Mazuelo)를 10% 이내로 블렌딩한다. 22개월간 아메리칸 오크 배럴에서 숙성한 후 병입 상태로 최소 1년 이상을 더 숙성해 출고된다. 법적으로 레세르바 등급에 해당하지만, 실제 숙성 기간이나 원료의 품질 면에서는 그란 레세르바에 가까운 정성과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와인은 깊고 진한 체리 레드 색상을 띠며, 잘 익은 검은 과실과 스파이시한 아로마가 조화를 이룬다. 감초, 시나몬, 블랙페퍼 같은 복합적인 향이 겹겹이 퍼지고, 숙성에서 오는 발사믹 노트가 은은한 긴 여운을 남긴다. 구조감이 뛰어나면서도 질감은 부드럽고, 입안에서는 균형과 조화가 살아 있다. 한 모금의 와인이 공간의 깊이처럼 다가오는 순간 이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닌 빛과 곡선, 시간의 미학 그 자체가 된다.

마르께스 데 리스칼 레세르바는 해외에서도 꾸준한 평가를 받고 있다. 2017 빈티지는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으로부터 93점, 2018 빈티지는 92점을 받았다. 2018 빈티지는 스페인의 권위 있는 와인가이드 '기아 페닌(Guía Peñín)'으로부터 93점을 받았다. 또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총 4회 수상했으며,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레드와인 구대륙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하이트진로(000080)가 수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