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한 서커스 공연장, 공중에서 춤추듯 균형을 잡는 곡예사들 모습이 젊은 조각가 시선에 들어왔다. 당시 예술계는 고정된 형태 조각이 주류였다. 미술관을 가득 채운 브론즈와 대리석 조각상들은 영원히 한 자세로 멈춰있는 작품이었다.
젊은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는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가 발명한 '모빌'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수석 큐레이터 앤 템킨은 "칼더의 모빌은 균형과 움직임, 시간이 만드는 살아있는 예술"이라고 평했다.
프랑스 샹파뉴 지역 오트로 가문이 만드는 '페를레 드라 뒤 그랑크뤼 밀레짐'은 모빌을 닮은 샴페인이다. 1670년부터 350년 넘게 이 가문이 만들어 온 샴페인은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했다.
1953년 제라드 오트로는 3헥타르 작은 포도밭으로 본인 브랜드를 단 샴페인 생산을 시작했다. 1980년대 그의 아들 에릭은 양조학을 전공하며 과학적 정밀성을 더했다. 현재 3세대 로랑 오트로는 현대적 변화를 추구한다.
그는 "우리 가문 샴페인은 정교한 시계처럼 모든 요소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며 "이는 350년간 우리가 추구해온 가치"라고 말한다.
19세기 유명 프랑스 시계공 브레게가 중력 영향을 정밀하게 제어하기 위해 투르비용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발명했듯, 오트로는 포도 압착 과정에서 오직 자연 중력만을 이용한다. 포도알이 받는 압력을 최소화해 가장 순수한 과즙만 얻기 위한 방식이다.
발효 온도는 18~20°C로 엄격하게 유지한다. 효모 활동을 최적화하고 샴페인이 섬세한 아로마를 품도록 돕는 이상적인 온도다. 샴페인을 만드는 포도는 아이(Aÿ)와 슈이(Chouilly) 두 지역에서 가지고 온다. 아이 지역은 진흙에 석회암 성분이 대부분인 토양이다. 이 지역에서 자란 피노 누아는 강렬한 과실 향과 구조감을 선사한다. 반면 슈이 토양은 백악질이다. 백악질 토양에서 자란 샤도네이는 짭조름함과 신선한 산도를 더한다.
오트로는 이 두 품종을 해에 따라 50 대 50, 혹은 75 대 25로 비율을 조절해 섞는다. 섬세하게 조율한 이 황금비율은 샴페인에 생명력을 결정한다. 샴페인 전문가들은 포도를 섞는 비율이 1% 달라져도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고 한다. 마치 모빌에서 작은 조각 하나 무게가 전체 움직임을 좌우하는 형상을 닮았다.
이 샴페인은 시간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병 속에서 6년 이상 숙성해 복잡한 풍미를 더했다. 처음에는 신선한 사과, 복숭아, 파인애플 같은 과실 향이 지배적이다. 이후 숙성한 효모에서 오는 구운 빵과 견과류 향이 더해진다. 절정으로 접어들 수록 크로와상처럼 버터가 가득 발린 빵의 끝부분, 오래 볶은 헤이즐넛 향까지 느껴진다.
전문가들은 10년 이상 이 샴페인을 숙성하면 송로버섯과 말린 무화과, 이국적인 동양 향신료 향까지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미술관에서 시간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칼더의 모빌처럼 오트로의 샴페인은 병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한다. 유력 와인 매체 와인엔수지애스트는 이 샴페인이 "프랑스 인상파 화가 모네의 작품, 루앙 대성당을 닮았다"며 "시간대별로 빛이 달라지는 대성당의 모습처럼 이 샴페인도 시간이 지날 수록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교한 균형감을 강조한 샹파뉴 오트로 페를레 드라 뒤 그랑크뤼 밀레짐 브뤼는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 스파클링 와인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와인투유코리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