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건축가 루이스 칸이 남긴 말이다. 그는 건물의 비대칭적 요소나 자연스러운 흠집이 오히려 완성도를 높인다고 믿었다.
디자인 경영의 대가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차별화는 제품의 본질적 가치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현대 디자인계는 이른바 '와비사비'에 주목한다. 이 역시 완벽하지 않은 것이 주는 아름다움이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디자인, 이세이 미야케의 구겨진 옷 모두 이런 맥락이다.
와인병은 17세기 무렵 현재와 유사한 형태를 갖췄다. 그전까지 와인은 주로 도자기나 염소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담았다. 공식적으로 지금 모습을 한 와인병이 등장한 시기는 1821년이다. 당시 영국 코츠워스 유리 제작소는 와인병 제조 기술을 혁신했다. 일정한 크기로 유리를 불어서 병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매끈하게 곧은 형태는 운송과 보관이 쉬웠다.
750ml라는 와인 1병 용량도 이때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 유리 기술자가 한 번에 불어서 병을 만들 수 있는 최적 크기였다. 여전히 이 규격은 와인병 열에 아홉이 이 규격을 따른다.
현재 와인병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몸통 부분이 직각으로 곧게 떨어지는 병을 보르도 형태라고 부른다. 반면 곡선을 그리는 병은 부르고뉴 형태 병이라 한다. 이 두 지역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 와인 생산지다.
유명 산지마다 병 모양이 다른 이유는 실용적 필요에서 시작해, 이제 지역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보르도는 영국과 파리를 잇는 와인 무역 중심지였다. 영국으로 가는 긴 항해 과정에서 적재 효율을 높이려면 병 모양이 곧고 일정해야 했다. 이 지역 와인은 보통 오래 묵혀서 마시는데, 날카로운 어깨선은 오래된 와인 침전물 처리에 적합했다.
반면 부르고뉴는 마차를 이용해서 와인을 배달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 주로 마셨다. 마차로 운송 시 병이 굴러가지 않도록 이 지역은 바닥을 넓게 만들었다.
프랑스 남부 론 지역 와인병들은 자유분방한 남프랑스 기질을 보여준다. 소위 남프랑스라 불리는 이 지역은 파리 지역과 전혀 다른 문화를 가졌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연의 리듬을 따른다.
프랑스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론 지역 포도 농부 95%는 여전히 전통적인 재배 방식을 고수한다. 화학 비료 대신 자연 퇴비를 쓴다. 기계 수확 대신 손으로 포도를 딴다.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최선의 포도를 얻으려 한다.
1952년, 이 지역 와인 양조가 샤를 브로트는 이런 미학을 담을 만한 와인병을 구상했다. 그는 프로방스 도예가를 상대로 와인병 경연 대회를 열고, 계절풍 바람에 휘어진 포도나무를 형상화한 병에 대상을 줬다.
미스트랄이라 부르는 이 북서 계절풍은 론 계곡을 상징한다. 남프랑스에서 지중해 쪽으로 부는 이 바람에 휘말려 포도나무는 여기저기 비틀리지만, 이 바람 덕에 병충해에서 벗어다. 미스트랄은 수확기에 포도를 건조하게 유지해 당도를 높인다.
브로트 가문이 대대로 이끄는 라 피올레(La Fiole) 와인들은 이후 이 비정형적이고, 뒤틀린 와인병에 와인을 담았다. 라 피올레라는 이름은 라틴어 피알라(Phiala)에서 왔다. 귀중한 약병이란 뜻이다. 14세기 한때 교황청은 이 론 지역 중심도시 아비뇽에 있었다. 교황 요한 22세는 이곳을 여름 별장으로 삼았다. 그는 이곳 포도밭을 직접 관리했다.
브로트는 이 점에 착안해 교황을 뜻하는 파프(Pape)가 들어간 밭에서 만든 와인 '라 피올레 샤토뇌프 드 파프' 병에 금빛 가루를 입혔다. 은은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뒤틀린 병은 시간이 켜켜이 쌓인 오랜 약병을 연상시킨다.
비틀리고, 구부러진 병은 론 지역이 와인을 대하는 방식을 상징한다고 브로트는 강조한다. 그는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아름다움, 완벽한 표준화를 거부하는 장인 정신을 병에 담았다. 와인 역사가 위그 존슨은 "라 피올레는 와인병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했다.
라 피올레가 만든 라 피올레 꼬뜨 뒤 론 루즈는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동원와인플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