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맥주, 와인, 위스키 등 주요 주류 부문 수입액이 2023년 같은 기간보다 일제히 줄어든 가운데, 오로지 사케(日本酒·일본식 청주)만이 엔저(엔화 가치 하락)를 타고 물밀듯이 밀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사케 수입액은 2426만달러(약 357억원)를 기록했다. 2023년 기록했던 사상 최대 수입액 기록 2475만달러를 11월이 끝나는 시점에 거의 따라잡았다.

사케는 보통 12월을 성수기로 본다. 이 시기에는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정종 수요가 몰린다. 연말 모임이 많아지면 일본식 선술집 등 음식점 사케 수요 역시 급증한다. 주류업계에서는 이런 점을 감안해 지난해 사케 수입 물량이 2023년에 이어 역대 최대 기록을 2년 연속으로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수입 중량으로 봐도 성장세가 가파르다. 사케 수입 중량은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매년 상승했다. 특히 2015년부터 2018년 사이 4년 동안 연평균 10% 이상 불어났다.

그러나 2019년 이후 불매 운동과 코로나 국면을 맞으면서 수입 중량 기준 최대 62%가 쪼그라들었다. 이 시기 국내 소규모 사케 수입사들은 잇달아 폐업을 선언했다. 일본식 선술집에서조차 사케 대신 막걸리나 국내산 청주 같은 전통주를 팔았다.

그래픽=손민균

사케는 불매 운동이 잦아든 2021년부터 다시 기지개를 켰다. 당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여행 길이 끊기면서 국내에서 일식 오마카세(요리사가 알아서 내주는 코스 요리)가 호황을 누리던 시점이었다.

한 사케 전문 수입사 영업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 전국 주요 상권에 고급 일식당들이 많이 늘었고, 이런 곳에서 좋은 음식과 맞춰 고가 사케를 마시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며 "수입 통계를 보면 이전에는 수입한 제품 가운데 팩으로 된 저렴한 사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지만, 이제 10만원이 넘는 사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주류업계에서는 사케 수입 물량이 올해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2018년 이후 100엔당 1100원을 웃돌던 원·엔 환율은 최근 930원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여름 한때는 850원대에 머물렀다. 환율 덕에 공급가가 낮아지자, 사케를 주류 메뉴에 다시 넣거나, 취급하는 사케 종류를 늘리는 업장도 늘었다.

팬데믹이 저물고 엔데믹 기간 일본 현지를 찾는 국내 소비자가 늘어난 덕에 사케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일본을 찾은 한국인 수는 795만명으로 역대 최고였던 2018년 전체 753만명을 넘어섰다.

자연스럽게 사케를 경험한 이들이 더 좋은 사케를 찾으면서, 사케 평균 수입액도 뛰었다. 2023년 사케 1톤당 평균 수입액은 4570달러였다. 지난해 평균 수입액은 톤당 4672달러로 2% 높아졌다.

사케 수입액은 아직 위스키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유통업계는 다른 주류 카테고리가 부진한 가운데, 사케만 성장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편의점 프랜차이즈 CU는 자체 사케 브랜드 '쿠'를 선보였다. GS25는 사케 취급 상품(점포별로 선택할 수 있는 품목) 수를 2021년 20여 종에서 120여 종으로 확대했다. 주요 주류 소매점은 사케 전용 냉장 진열 시스템을 구비하기 시작했다. 온도가 일정하지 않으면 변질되기 쉬운 사케 특성에 맞춘 판매 전략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일본을 직접 찾는 여행객이 줄을 설 정도로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희미해지면서 사케에 대한 인식도 반일 불매 운동 때보다 훨씬 나아졌다"며 "일본 정부도 쌀 소비 촉진 차원에서 사케 수출을 의욕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당분간 활발한 프로모션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