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의 화두는 비용 줄이기입니다.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 비용을 줄이려다 보니 올해 연말에 희망퇴직 소식도 줄을 이었습니다. 각 기업의 총무팀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올 연말에 보고한 내년 사업 계획엔 거창한 계획이 없고 어떻게 비용을 줄일지에 대한 고민만 담겨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픽=정서희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대백화점그룹의 친환경 건자재 기업 현대L&C(현대엘앤씨)가 비용감축을 위해 직원 식대비를 삭감하려다가 철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셌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해도 갑니다. 식대비가 실상은 연봉의 일환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월급 200만원에 식대 10만원을 줘서 월급이 210만원이 되는 구조가 아니라 월급 210만원에 식대 명목으로 10만원을 분류해 왔다는 뜻입니다. 이는 근로자나 회사나 모두 비과세 혜택을 보기 위한 처리입니다.

식대비는 월 20만원까지 비과세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비과세 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소득세 등을 내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근로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4대 보험을 직원과 반반씩 부담하는 회사 입장에서도 보험료를 줄일 수 있고 마찬가지로 소득세와 지방세가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엘앤씨의 한 직원은 “회사도 직원도 비과세 혜택을 누리기 위해 연봉에서 식대를 분류했던 것인데 이제와 비용을 줄인다고 이걸 진짜 식대로 보고 일방적인 통지로 줄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실제로는 연봉 삭감인데 이를 은근슬쩍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식대비가 사라지는 대신 현대그린푸드의 도시락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힌 것도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이유입니다. 현대백화점그룹 인사에 따라 현대그린푸드의 푸드서비스사업본부장이 현대엘엔씨 대표가 선임됐기 때문입니다. 인사와 맞물려서 괜한 논란도 나왔습니다. 아무리 현대그린푸드에서 새 대표가 왔기로서니 현대엘앤씨 직원들의 연봉을 줄여 현대그린푸드의 매출을 늘려주려고 하느냐는 지적입니다.

직원들 입장에서 충분히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현대엘앤씨도 할 말은 있습니다. 식대비는 원래 식사를 지원하지 않아 외식을 해야 하는 직원을 위한 항목이라는 점입니다. 회사에서 도시락을 제공하면 식사를 지원하는 것인 만큼 식대비를 없애는 건 원칙적으로 맞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물론 법리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운영되는 측면에선 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회사나 직원이 모두 좋기 위해서 회계 처리를 현실과 다르게 하는 경우도 실제 기업 일선에서는 왕왕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변화가 있을 때 불만이 나오기도 합니다. 노동시장에 노무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노무사는 내년에 대목이 펼쳐질 것으로 조심스럽게 본다고 말합니다. 경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다 보니 갑작스런 권고 퇴사, 퇴사에 응하지 않은 직원의 원치 않는 전근 등 갈등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입니다. 경제 전망이 어둡다 보니 나올 수밖에 없는 갈등입니다.

어쨌거나 현대엘앤씨는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보를 결정했습니다. 직원 식대비 삭감 기조를 더 논의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현대엘앤씨 관계자는 “기존처럼 식대 10만원을 지급하는 것과 식대 지급 대신 중식을 제공하는 것을 실무 부서에서 검토했으나, 최종적으로 기존대로 식대 1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회식비 지원 등 다양한 부분에서 허리띠를 졸라맬 예정입니다.

비용 효율화는 기업 경영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갈등에 치달을 정도로 비용을 줄이지 않아도 되는 2025년이 펼쳐지길 바라봅니다. 내년 이맘때에는 ‘노사가 함께 어려움을 잘 헤쳤다. 덕분에 살만했다’는 평가가 나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