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배추·금(金)사과·금(金)배…

긴 폭염과 때아닌 폭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상기후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등도 매년 반복된다. 흉작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 농민(생산자)이나 소비자는 모두 울상을 짓는다. 흉작으로 기대만큼 농산물을 수확하지 못한 생산자는 손해를 입고 소비자는 밥상 물가가 높아지는 탓이다.

하지만 작황과 무관하게 수익을 그대로 보는 업체도 있다. 바로 농산물 청과도매법인이다. 공급이 줄면 출하 가격이 높아지는데 이들은 농산물 낙찰 가격에 일정 부분 수수료(4~7%)를 받는 덕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고 모회사에 고배당을 한다. 이들 도매법인에겐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등이 수익과 무관하다는 뜻이다.

그래픽=정서희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국 농산물의 20%가량이 유통되는 가락시장 도매법인 5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가락시장 도매법인은 중앙청과, 대아청과, 동화청과, 서울청과, 한국청과다.

안정적인 수익이 꾸준히 나면서 지난해엔 5개 법인의 배당 규모가 300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지난해 5대 법인인의 배당액은 281억원 수준이다. 이들의 작년 당기순이익이 319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벌어들인 순이익의 대부분이 배당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가장 많은 배당을 한 곳은 중앙청과로 141억원을 기록했다. 배당은 모회사인 태평양개발로 흘러갔다. 태평양개발은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의 친형인 서영배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두 번째로 배당을 많이 한 곳은 동화청과로 50억2500만원을 기록했다. 동화청과는 원양어업을 중심으로 식품가공과 철강·외식업 계열사를 가진 신라교역이 가지고 있다. 세 번째는 간발의 차이로 한국청과가 차지했다. 지난해 배당은 50억원이었다. 한국청과는 더코리아홀딩스라는 경영컨설팅 업체가 지분 95%를 갖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매법인이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 독점적 위치로 과다한 이익을 취하면서 정작 이 이익의 대부분이 농업과 관계 없는 모회사로 흘러간다고 지적한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지적이 나왔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에서 영업이익 20%대를 꾸준하게 보장받는 회사는 거의 없다. 2022년 고유가 당시에도 정유사들이 누린 영업이익은 6%대였다”라며 “정부와 국회가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혁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동안 농산물 유통시장은 철강·건설사들의 수익창출원이 됐다”고 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유통사의 영업이익률을 언급했다. 조 의원은 “현대그린푸드, 신세계 등 유통사의 영업이익률이 5% 미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락시장 도매법인의 폭리가 증명된다”면서 “담합 의혹이 너무나 짙다”고 했다.

국정감사에서 도매법인 문제가 계속 지적되는 이유는 농산물 물가 안정을 위해서다. 국내 농산물 유통구조는 생산자→도매법인→중도매인→소매점→소비자로 구성돼 있다. 도매법인은 생산자가 맡긴 농산물을 비싸게 팔수록 이익이 많아진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거래 참여자는 최대한 저렴하게 낙찰받아야 이득”이라며 “이 과정에서 가격이 결정되지만, 유통 구조상 도매법인이 독과점인 상황이라 이 문제가 언급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김윤두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35년간 특정 청과 회사를 통해서만 경매가 이뤄지도록 법에서 독과점을 허용한 것은 완벽한 진입장벽을 세워 고수익을 보장해 준 것”이라며 “위탁수수료 인하 경쟁 같은 것이 벌어질 수 없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서울 도매시장의 거래제도와 거래방법 등에 대해 심의하는 서울 도매시장 시장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지하고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농산물 출하·유통 실태점검을 통해 개선 방안을 도출하기로 했다. 다만 결론 도출까지 난관은 많다. 당장 5대 도매법인이 적극적으로 지적을 반박하고 있어서다.

도매법인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는 “가락시장의 상한 수수료 4% 중 지자체에게 납부하는 시장사용료와 출하·판매 장려금, 하역비 등 지출 비용을 공제하면 실제 받는 수수료율은 1~2%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유통업계에서는 40년 정도 이어진 구조를 바꾸기 쉽지 않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오히려 개선을 빌미로 도매법인의 수익만 보장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도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도매법인이 경매를 주관하는 대가로 챙기는 수수료 7% 상한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 알려져서다. 독점 혜택은 두고 상한 수수료만 손보면 도매법인 배불리기에 그치는 개선일 수 있는 탓이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황에서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마트나 백화점과 같은 소매법인은 그 동향에 대해 소비자와 언론이 관심이 높은 편이지만, 도매법인은 관심이 덜하다”고 했다.

이어 “일단 독과점을 풀어야 하지만 사업영역을 지키려는 쪽과 신규진출하려는 쪽의 칼과 방패 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며 “확실한 사실은 돈이 안정적으로 벌리는 업태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